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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Sep 18. 2023

그냥, 생각나서

어깨가 무거운 이 시대 어른이들에게

고요한 저녁,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이름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운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교차했다. 연락이 끊어진 지 10년이 넘은 대학 후배의 '잘 지내냐'는 메시지였다. 뜬금없이 연락 온 이유가 뭘까? 접점이 없는 후배라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안부를 물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혹시 따로 할 말이 있어 연락을 한건 아닌지 조심스레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냥'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냥'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 않는다. 나이가 들며 더욱 쓸 일이 없어졌다.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알게 된 어른이에게 그냥이라는 말은 무책임하고 치기 어린 어린아이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냥의 사전적 의미>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만 하는 네모 반듯한 일상 속, 그냥 생각나 연락했다는 후배의 말에 잊고 있던 천진난만한 마음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산을 한 손에 쥐고 이유 없이 내리는 비를 맞거나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하찮은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당장 나와 놀자며 고집을 부리거나 하는 일. 그냥 한 일, 의미 따위 없어도 재밌고 설렜던 일들. 의미 없이 보낸 하루에도 웃을 거리 가득했던 날들을 추억해 본다.


용건 없는 연락, 목적 없는 외출, 쓸데없는 쇼핑. 가끔은 실속 없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실패하지 않고 낭비하지 않으려 두 손 불끈 쥐고 살아가는 어른이들에게 "가끔 그냥도 괜찮은 걸로 하자 우리"


의미 없이 건넨 전화를 웃으며 그냥 받아주는 어른이 너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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