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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6. 2021

아차산에서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년 초에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팔당에서 전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올해 자주 만나 등산을 하거나, 경치 좋은 양수리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자고 했는데 어느새 6개월이 훌떡 지나갔다.


카톡을 통해 수시로 연락하며 사이클은 힘들지만 등산이라도 가려했는데, 몇 명 안 되는 인원에도 주말마다 일이 생겨 4~5명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2년 후배가 지난주에 정한 곳이 아차산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근 2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아 그곳이 최근에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아차산 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동안 아차산에 심취해 있을 때 눈감고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밤에 서울시내의 불야성을 보고 싶어 초겨울에 친구 셋이서 야간산행을 하였다.


등산할 때는 그다지 어둡지 않아 해맞이광장에 올라 멋진 서울 야경을 즐겼는데, 주간에 빠르면 10분이면 하산하는 길을 잘못 들어와  40여 분간 헤매다가 추워 동상에 걸린 뻔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었다.


나는 각종 모임에 회장과 총무를 맡아 남들 눈치를 보며 코스를 정하다 보니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참석자의 성향을 보고, 등산을 할 것인가 산보 수준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나이가 들다 보니 다들 관절이 안 좋아 몇 년 전부터 가급적 등산은 피하고 하이킹을 하다 보니 서울 인근의 남산, 낙산, 안산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 북한산 둘레길과 올림픽공원까지 번갈아 돌아다녔다.


왜냐하면, 300미터도 안 되는 아차산도 모름지기 산이라고 기피하다 보니 집 가까이 있어도 갈 기회가 없었고, 그냥 멀리서 쳐다볼 뿐이었다.


우리는 광나루역에서 만나,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태왕사신기 촬영장 공터에 주차한 후에 천천히 올라갔다.


다행히 어제 서울은 밤에 비가 와서 애국가 가사처럼 '가을 하늘 공활한데 맑고 구름 없이' 그대로였고, 산들바람까지 솔솔 불어 동료들은 날씨가 참 좋다며 이구동성으로 오늘 날짜를 잘 잡았다고 칭찬하였다.


2년여 사이에 아차산은 해먹 베드, 배드민턴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더운 여름에 새소리를 자장가 삼아 누워 피서해도 좋게 잘 꾸며놓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쉬엄쉬엄 오르는데도 30분이 안되어 정상으로 가는 양갈래 길에 다다랐고, 우리는 계단과 바위가 많아 불편하고, 더구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가 우거져 그늘진 대성암 쪽으로 향했다.


2~3분쯤 걸었을까 한강이 바로 아래 내려다보였고, 그 우측으로 마치 키가 다른 백묵을 세워놓은 듯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한강으로 뛰어들 것처럼 떼를 이뤄 펼쳐있었고, 그 뒤를 예봉산과 검단산이 그리고 우측에는 남한산성이 지켜보듯이 병풍처럼 푸르게 감싸고 있었다.


와우!  바로 이거야!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장관을 보고 환호성을 울렸고, 우리는 혼자서,  둘이서, 단체로 각기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 날짜도 잘 잡았지만, 아차산을 선정한 것은 정말 잘했다며 또 한 번 친구들은 침을 튀기며 얘기하였다.


대성암에서 한강을 쳐다보며 잠시 간식을 한 후에, 우리는 족히 45도 경사진, 30미터 길이 바위 언덕을 로프를 단단히 잡고 넘어서 2보루로 갔다.


한 친구는 그곳에 자리잡기를 원했지만, 아차산을 20번 넘게 와본 나는 더 전망이 좋은 5보루로 안내했다.


5보루는 유명세만큼 이미 단체 등산객들이 전세를 낸 듯이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비싼 한강 전망은 포기하고 북한산이 쳐다보이는 나무 주변에 돗자리를 깔았다.


각자 무겁게 메고 온 배낭에는 막걸리 3병, 토마토, 참외, 두유, 맥반석 계란 6개 그리고 마른안주와 과자를 하나 둘 꺼내니 푸짐했고, 술꾼 2명은 술을 주고받았고, 나와 후배는 과일과 안주로 배를 채웠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은 백제의 도읍이 한강유역이었을 때 산성을 축조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막는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특히 우리가 머물었던 5보루는 360도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광을 자랑하여 과거 한때는 내가 돗자리에 누워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신선놀음을 했던 곳인데, 후배도 마음에 들었는지 반려견과 조만간 또 오겠다고 하였다.


수년 전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등산객을 누군가 목격해 즉시 마사지하여 목숨을 살린 벤치를 다시 한번 쳐다본 후에, 해맞이 광장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하산하면서 역사 지식을 뽐내다가, 경주 이 씨 출신이라 결국 가문의 품격과 전통까지 자랑하던 친구는 조선의 개국공신 의안대군(이화)의 자손인 내 존재를 인식하고는 조용히(?) 말문을 닫았다.


직장 초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 우정을 쌓은 친구들은 하나 둘 대사증후군에 걸려 힘들지만, 모처럼 만나 할 얘기가 많은지 아직도 힘이 넘쳤고, 맑고 푸른 하늘만큼 오늘은 모두 청년들이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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