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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Oct 06. 2021

어버이날 선물

매년 어버이날은 따로 사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번 어버이날은 강남역 인근에 있는 깨끗하고 전망 좋은 유명 감자탕 집에서 했다.

그동안 우리는 패밀리 레스토랑, 샤부샤부 집 등을 전전했는데, 이는 대부분 아이들 취향이었고, 아마 부모님은 한식을 원하실 것이라는 동생들의 의견에 이번에는 감자탕집(보쌈)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자주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 등을 대접하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 3남매는 수시로 부모님께 연락드리며, 서로 방문하고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부모님 건강, 아이들의 공부, 사업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고, 식사 후에는 항상 그랬듯이 모두 노래방으로 향했다.

깔끔하고, 첨단 시설을 갖춘 노래방은 우리 가족 12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컸다.

대형 프로젝션 화면의 가사에 맞춰 노래하고, 일부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즐기니 어느덧 예정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부모님은 흘러간 옛 노래를, 동생들은 포크송, 그리고 초,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내가 난생처음 듣는 빠른 록 뮤직을 주로 불렀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멋지게 불러 나를 놀라케하더니, 학년이 오를수록 점점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동요 등을 주로 부른 것 같은데, 요즈음 아이들은 성인가요를 꿰뚫고 있어 언제 그런 어려운 노래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이는 내가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동백아가씨, 님과 함께”를 춤추며 부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밤 10시경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니, 학원 가느라 참석 못한 고3인 딸아이가 사놓은 카네이션 꽃다발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글을 직접 그린 코믹한 만화와 함께 예쁜 엽서에 써놓았다.

나의 조그만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큰다"라고 하는데, 이렇게 바르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이윽고 노래방에서 숨은 성인가요 실력을 발휘했던 아들 녀석이 슬그머니 봉투를 내보였다.

그 속에는 제법 잘 다듬어진 글씨체로 “어버이 은혜에 감사한다”는 글귀와 함께 4장의 카드를 우리에게 주었다.

명함만한 카드 위에는 ‘효도 상품권’, 그 아래에는 ‘안마 무제한, 심부름 무제한’이라고 각각의 종이에 색연필로 예쁘게 적어놓았다.

이는 아내와 나에게 각각 주어졌는데, 녀석은 필요시 언제든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웃으며 얘기하였다.

녀석은 누나처럼 비싼 꽃다발을 사기에는 무리여서,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나는 기특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드며 잘했다고 칭찬했다.

비록 늦둥이고 말썽꾸러기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니 세상 사는 맛이 난다.

어제 지방 출장을 다녀와서 피곤한데, 오늘은 아들이 준 '안마 상품권'을 써야겠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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