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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밤눈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잠 만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치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라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어제 세시봉 가수 송창식의 '밤눈'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고 감동받았다.


그가 부른 '왜 불러' '한 번쯤', '피리 부는 사나이' 등 노래는 스트레스가 확 풀릴 정도로 경쾌하고 재미있지만, '우리는', '사랑이야' 등은 무척 정감이 있어 듣고 있으면 마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런 그의 노래를 알고 있어 '맨 처음 고백'을 십팔번 삼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렀던 내가 이제야 '밤눈'을 듣게 되다니 한심스럽지만, 한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래를 몇 번이고 심취해 들으니, 그가 아니면 어느 가수가 이렇게 눈이 오는 겨울밤을 멋지게 부를 수 있을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시외버스를 타고 차창밖 멀리 눈 덮인 산과 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마치 수년 전에 미국 여행 갔을 때 대형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명소인 금문교를 건널 무렵 한국인 가이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수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를 틀어주었을 때 가슴이 벅찬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감하고 싶어서 즉시 몇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카톡으로 보냈다.


'밤눈' 노래 가사와 리듬도 좋지만, 한밤중에 소리 없이 하얗게 눈 내리는 영상을 마냥 바라보니 내가 오래전 경기도 파주 파평산 아래 1사단 예하 포병부대에서 위관장교로 복무할 때의 기억이 뭉실뭉실 떠올랐다.


나지막한 언덕 초소에서 내려다본, 한적한 시골마을의 슬레이트집들이 연상되었고, 이어진 다른 영상 또한 그 동네의 평온한 정경을 그대로 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노래만 들어도 '밤눈' 분위기가 상상이 되는데 가사에 맞춰 흑백 영상까지 일치시키니,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 일직사관이 되어 초소를 순회하는 것 같다.


더구나 그 추운 겨울밤 판문점에 인접한 GOP에 근무했을 때, 내 작은 방에 누워 그 당시 거의 한 달치 소위 월급을 주고 산, 예쁜 일제 카세트 아이와에서 리듬에 따라 펑펑 터져 나오는 핑크색 빛을 바라본 느낌을 그 누가 알아줄까!


그때는 애인이 없고, 그렇다고 친구도 가까이 있지 않았지만 이렇게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만 들어도 한밤이 즐거웠는데, 요즘은 노래에 맞춘 멋진 영상까지 제공하는 유튜브를 보게 되니 격세지감이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창 넓은 찻집에서 내 좋은 사람과 눈 덮인 야산을 바라보며 뜨거운 아메리카를 마시고 싶다.


그곳은 세련되지 않아도 되지만, 내 군대생활의 추억이 묻어있는, 가능한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카페였으면 좋겠다.


또한 요즘같이 추운 겨울이면 더할 나위가 없고, 그때 송창식의 '밤눈' 유튜브도 함께 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겪은, 진부한 군대 이야기도 양념을 쳐가며 감칠맛 나게 얘기하리라!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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