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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13. 2024

Keep Calm & Get 뭐뭐

에스키모인들이 사용하는 눈의 종류가 백 개도 넘는다는 말을 믿고 있었는데 아니라는군요. 단어라기보다는 형태소들이 자유자재로 뭉쳤다 떨어지는 것이라고요. 이누이트어, 핀란드어에 눈 관련 단어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우리나라보다는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100개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잘못된 이야기로 시를 썼네요. 사실 우리의 눈 종류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랑눈, 가루눈, 함박눈, 소나기눈, 싸락눈, 마른눈, 진눈, 진눈깨비, 자국눈, 살눈, 잣눈, 길눈, 밤눈, 도둑눈, 숫눈...      


타투하러 간 집에 붙여둔 포스터에는 ‘Keep calm & Get tattoo’라고 새겨져 있었어요. ‘Keep calm & Carry on’의 변용이지요. 이 문구는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에도 불구하고 차분함을 유지하며 일상을 꾸려 나가자는 영국 정부의 포스터 속 표현이고요. 이런 식으로 자주 보게 되는 새로운 언어 현상을 변용, 다시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것을 '스노우클론(snowclone)’이라고 합니다. 2003년 언어학자 지오프리 K 풀럼(Geoffrey K. Pillum)의 주창으로 시작되었다고요.(2017. 7.12 넥스트데일리, Joyce의 세상물정 영어)


‘스노우클론’이야말로 에스키모인들의 눈의 종류에 대한 오해 탓에 생긴 단어랍니다. 독일사람들이 지나치게 관료적이라는 것을 비꼬며 ‘독일어에는 관료제를 일컫는 단어가 수십 개다’라고 하고요. 미국인들이 당황스럽다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써서 ‘미국에는 당황스럽다는 표현이 무한대로 존재한다’고 꼬집는답니다. 찾아보니 그런 단어가 많긴 하네요. 우리에게는 뭐가 있을까요. ‘한국에는 죽겠다는 표현이 수십 개다’라고 할 수 있겠어요. 바빠 죽겠고, 지루해 죽겠고, 재밌어 죽겠고, 이뻐 죽겠고, 미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고, 배불러 죽겠고, 졸려 죽겠고, 잠이 안 와서 죽겠고... 그런데 죽고 싶어 죽겠다는 말도 쓰나요? 살고 싶어 죽겠다는 말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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