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ote와 Notion 의 생존전략
Evernote는 출시 된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유저로부터 사랑받아왔습니다. 당시 분산된 노트들이 (지금은 너무 당연한) 클라우드 기반으로 동기화되는 최초의 앱이였죠. 게다가 Windows, Mac은 물론 iOS, Android, Windows Phone, Blackberry까지 현존하는 모든 디바이스를 지원하는 유일무이한 노트 앱이었습니다.
Evernote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Evernote Web Clipper를 이용해 전 세계 모든 웹 정보들을 클릭 한두 번으로 Evernote에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Evernote 전용 Incoming 이메일을 통해 이메일과 첨부파일까지 손쉽게 Evernote에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Scannable을 이용해 문서를 손쉽게 스캔하고, 저장된 이미지 내의 텍스트를 추출하여 검색이 가능하도록 해주었죠.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일부 API를 외부에 공유하여, 수많은 외부 애플리케이션들이 Evernote 와 연동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Evernote와 연동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과 스캐너와 같은 연동 디바이스까지 출시 되었죠. 물론 Evernote 가방, Evernote 양말 등의 센스있는 디자인의 굿즈들도 빼놓을 수 없는 Evernote만의 매력이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Evernote는 자타공인 클라우드 기반의 노트 앱 선구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덕분에 전 세계에 Evernote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이 생겨났고, 무려 전 세계 2억이 넘는 유저들이 Evernote를 사용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Evernote에 너무 많은 정보를 쌓아놓은 탓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게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찾기 위해 노트 정리가 필요했고, 매번 노트를 정리하는 것도 여간 힘들고 불편한 일이 아니었죠. Evernote에 대해 아쉬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바뀌는 UX/UI에 힘들어했고 시간이 갈수록 무겁고 느려지는 Evernote에 불만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앱은 무거워짐에도 기능적인 업그레이드는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유저가 새로운 기능 업데이트를 요구했지만, 초기에 보여주었던 다양한 기능 추가와 혁신은 점점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능들은 특정 OS에만 추가되는 경우도 많아 OS에 따른 차별도 발생했죠. 게다가 노트가 많아질수록 동기화 문제도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무거운 기능을 모두 없애고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유저들의 요구가 빗발치게 되었죠.
Evernote는 왜 이런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리고 왜 수많은 유저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었던 걸까요? 물론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겠지만 오늘은 제품 자체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알아볼까 합니다. Evernote가 처음 출시된 디바이스는 놀랍게도 아이폰이 아닌 Windows 및 Windows Phone(당시 CE) 용 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iPhone의 앱스토어가 오픈되기도 전이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Apple의 앱스토어가 외부 개발자에게 오픈되었고, Evernote는 운이 좋게 첫 번째 앱스토어 용 3rd Party 앱 중 하나로 합류할 수 있었죠. 그 덕분에 폭발적인 신규 유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효과를 톡톡히 본 Evernote는 AppStore를 Growth를 위한 메인 전략으로 택하였습니다. 매년 Apple WWDC 또는 Google I/O를 통해 공개되는 각 OS별 최신 API들을 제품에 반영하고 AppStore 상단에 노출되는 전략을 세운 것이죠. 이러한 전략은 AppStore내에서 더 쉽게 노출되고 더 많은 유저를 확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OS별 제품의 통일성을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발생했죠. 각각의 OS마다 OS에 맞게(Native로) 개발했기 때문에 제품 기능 구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제적으로 OS별 최신 API와 UX/UI를 적용한 덕분에 Apple WWDC나 Google I/O 이벤트에서 매년 Evernote는 좋은 사례 중 하나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신 기술일수록 모든 OS에서 적용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기술이 한 OS에서는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다른 OS에서는 구현이 어렵거나 구현 자체가 불가능할 때가 많았던 것이죠. 당시에는 하이브리드 앱 개발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이러한 개발은 앱스토어 전략상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OS마다 Evernote 앱은 사실상 완전히 다른 앱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과 같이 AWS나 GCP와 같은 클라우드가 상용화되기 이전에 출시한 제품이었기에 자체적으로 서버를 운영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기술의 레거시들이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2억 가까운 유저를 생각하고 설계된 구조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유저 한 명당 수천에서 수만 개의 노트를 사용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개발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러한 기술 부채를 해결하는 속도가 Evernote의 폭발적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게 되며 여러 제품의 이슈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저들은 그런 Evernote의 속사정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눈높이는 점점 더 높아지게 되었죠. 더 많은 '필수'기능들을 지속해서 요청하였고, 매년 새로운 혁신을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저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기술 부채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결국 수많은 유저의 실망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Apple이 처음 iPhone을 출시했을 때 많은 사람은 환호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Windows CE나 Android와 같은 자유도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Apple은 사용성과 보안을 핑계로 늘 기능 제약을 둔 iOS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애플의 WWDC 때마다 하나둘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새로 출시된 기능들은 Android에서는 이미 지원되는 기능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은 그것이 더 현명한 전략이라며 Apple에 열광했던 것이죠.
어쩌면 Notion은 노트 서비스에서 Apple과 많이 닮았습니다. Evernote 사용자들은 늘 더 복잡한 편집기능을 Evernote에 요청하였습니다. 더 많은 폰트 지원, Word와 같은 여백 및 프린트 지원 등등 기존 워드프로세서의 편집기와 같은 기능을 갖추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Evernote는 늘 더 나은 편집기를 제공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죠. 그런데 Notion은 반대로 이 모든 기능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버렸습니다. Notion에서는 폰트도 바꿀 수 없었고, 글씨 크기도 4단계밖에 지원되지 않습니다. 대신 심플한 블록을 제공하였고, 주어진 블록 내에서만 잘 활용하면 대충 적은 문서도 엄청 예쁘게 보이는 마법을 선보인 것입니다.
다양한 편집 기능을 없앴지만 대충 작성해도 예쁘게 보이는 Notion이 싫지 않았습니다. 물론 검색기능은 Evernote에 비해 다소 부족했지만, Evernote에서는 지원하지 않는 서브 페이지를 만들 수 있어 구조적으로 페이지를 관리할 수 있었죠. 게다가 YouTube 등의 외부 링크를 임베드 할 수 있는 기능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공유 기능을 이용하면 쉽고 예쁘게 만들어진 페이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획기적이었죠. (게다가 서브페이지까지 한 번에 말이죠!)
마침 Evernote의 기능적 변화에 목마르던 많은 유저는 Notion이라는 새로운 도구에 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Evernote에 쌓인 수많은 노트들을 수고롭게 옮기는 불편을 감수할만했던 것이죠.
그러나 Evernote도 계속 정체될 수만은 없었죠. 정체기 동안 2번이나 CEO가 바뀌면서 다양한 변화를 꾀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기술 부채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이 있었는데요. 바로 Apple의 엔지니어 출신의 Ian Small 신임 대표였습니다. 그는 직접 제품을 만들던 사람이었던 만큼 Evernote에 합류하자마자 기술 레거시 문제를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Behind the Scenes Series 영상을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기술적 레거시 문제를 하나하나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죠. 그리고 앞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유저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솔직하게 설명하고 로드맵을 공유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rNUpXYCcrA&feature=youtu.be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Evernote는 유저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꽤 오래된 기술 부채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각각의 기술 스택별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유튜브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UX/UI를 통일시키고, 하이브리드 앱으로의 전환을 예고했죠. 정말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을 실사용에 문제없이 완전히 리팩토링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CEO가 직접 유저들과 로드맵을 공유한 이상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필수 과제가 된 것이죠. 저 역시 영상을 보며 변화될 Evernote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Notion을 병행해 사용하며) 그들의 변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술 부채를 해결하는데 예고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 시간은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노트 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Roam, Obsidian, Bear 등등) 기다리다 지친 수많은 Evernote 유저들을 다른 노트 앱으로 갈아타기 시작했죠. Notion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Evernote가 하이브리드 앱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모든 OS의 기능을 하나의 Interface로 통일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통분모가 아닌 기능들이 부득이 제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변화된 Evernote는 오히려 기능이 축소되었다는 평을 듣기 일쑤였죠. 이렇게 실망감은 더 커지고 유저의 이탈도 늘어났습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이 과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부족했기에 더 많은 유저 이탈로 이어졌겠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하이브리드 앱으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가 어쩌면 새로운 Evernote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죠. 이제 OS마다 따로따로 개발된 독립된 앱이 아닌 Interface가 통일된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손쉽게 기능을 추가하고 모든 디바이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것이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기 시작했습니다. Evernote Home부터 구글 캘린더 연동, Task 기능 추가 등등 그동안 Evernote 유저들이 요청했던 기능들이 기존과는 다른 속도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결국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쳐 새롭게 도약할 발판이 준비되었습니다.
Notion은 Evernote를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개인보다 협업툴의 역할을 강조하며 B2B 세일즈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사실 이 부분 역시 Evernote가 성공하지 못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더 유용한 All-in-one Workspace가 되기 위해서는 Notion으로 시작해 Notion으로 끝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Notion은 기존 비즈니스 필드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서비스와의 연동(Integration)을 핵심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도 임베드 기능을 통해 일부 연동 기능을 지원하긴 했지만, 연동 API를 제공하지 않아 외부 서비스와의 연동이 불가능했죠. 그러나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API를 공개하며 연동 서비스들을 늘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현재는 Slack, Asana, Jira, GitHub 등을 직접 연결하거나 Zapier를 통해 다양한 외부 서비스들과 자유로운 연동 및 자동화가 가능해졌죠. 이러한 연동은 결국 비즈니스 환경에서 전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매우 큰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Seamless 한 필수 비즈니스 제품 간의 연동과 자동화를 통해 한두 명의 소수 관리자만으로도 전사적인 지식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Notion은 노트 앱을 넘어서는 비즈니스용 제품으로써의 강점을 공고히 해가는 모습입니다.
Evernote와 Notion은 노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각자의 개성을 더욱 드러내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가진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보완해가며 더 큰 성장의 방법들을 모색해가고 있는 것이죠.
Evernote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검색 기능입니다. 또한, 특별한 고민 없이 바로 [새 노트]를 만들어 노트 작성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노트 작성을 위한 초기 에너지 비용을 매우 낮추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노트들을 서로 연결하는 기능에 있어서는 최근 출시되는 제텔카스텐 방식의 노트 앱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기존에 매우 유용했던 관련 노트(Context) 추천 기능이 사라진 것도 매우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Evernote는 개인 또는 회사의 아이디어 지식 창고로써 손쉽게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연결하고, 가치를 더해가는 UX/UI로 발전되어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새롭게 출시된 Task 및 Google Calendar 연동 기능도 기존의 다른 연동 프로그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Notion의 경우 팀을 위한 협업 솔루션에 더 집중하고 있는데요. 사실 팀은 개인과는 다르게 자유도가 높을수록 오히려 어렵다고 느껴져 사용성이 떨어지고 맙니다. 또한, 개인 사용자가 자신의 기준을 만들어 마음껏 서브 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문제없지만, 팀 워크스페이스 사용자가 Notion 내에 페이지를 늘려가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이지 생성 전 페이지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매번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 때마다 어디에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NBOX 공간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어디에 페이지를 생성해야 할지 고민 전에 바로 페이지를 생성한 후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Evernote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저장하고, 충돌시키고, 생성하는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Notion의 경우 현재 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연결하고, 정리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윗글을 통해 두 제품의 성장과 방향을 훑어보며 나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는 좋은 기준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여전히 두 제품의 업데이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설레는 요즘입니다.
생산성 뉴스레터 당근메일을 통해 더 빠르고 다양한 생산성 소식을 전합니다.
클래스 101 강의를 통해 다양한 생산성 툴과 법칙을 큐레이션 합니다.
퍼블리를 통해 보다 상세한 생산성팁을 나눕니다.
밑미를 통해 리추얼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