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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나중에~'라는 남자.

언제까지?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즐긴다. 종종 뜬금없는 놀이도 만들어낸다. 아이들도 아빠의 말도 안 되는 놀이룰과 제안에도 맞받아쳐주며 놀아준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안 놀아줘도 되는 때가 찾아왔다. "아빠가 공 받아줄까?" " 아뇨. 애들하고 점심 사 먹고 게임 뛰기로 했어요." " 응...." 

순간, "나중에"라며 미룬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해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때가 있군!!!

"나중에"를 너무 많이 사용한 아빠는 당황했다. 그리고, 잠시 돌아봤다. 


  너무 더운 폭염날씨라서 텅텅 빈 잔디공원을 우리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했다. 땀이 그냥 줄줄 흘러내렸다. 힘들어서 혀를 내밀었는데 혀도 뜨끈뜨끈했다. 나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코로나만 아니면 사우나 가서 몸을 풀어주는 건데. 바바나우유와 함께." 라며 말했다. 또, "우리 이 길로 일본 온천 가서 다 함께 가족목욕하면 좋겠는데~~ 엄마 아빠 신혼여행 때 최고였거든"이라며 분위기를 뭉실뭉실 띄운다. 아이들이 덥석 물었다. 

"언제요? "

아이들은 혹시나 해서 얼른 묻는다.  

"나중에 아니면 내년에." 라면서 얼른 정신을 차린다. 말한 것을 지켜줘야 하는 게 아빠인 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이런 대화를 곁에서 듣는 아내가 늘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남편, 아이들이 이제 제법 컸어요. 그런 제안하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바로 준비를 시작해요. 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아요. 이제는 제발 희망고문하지 말아요." 

"알겠어요. 여보. 미안해요."



  아이들과 여행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랜선 세계여행을 하다가 

"우리도 저렇게 한 달 정도 짠내투어처럼 소액으로 먹고 자고 사진 찍으면서 지내볼까?"

"좋아요. 언제요?"아이들의 질문세례가 시작되었다. 

"응. 나중에."

"에이. 맨날 나중이래."

"남편. 제발요... 지금 여력이 안 돼요."

"알겠어요. 얘들아 지금은 안된대. 이사를 잘 마무리하고 학교도 정리되면 그때 하는 걸로 하자! 엄마말 듣자."

"남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요. 왜 내 핑계를 대요. 애초 그런 분위기 만들지 마요."



  나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아빠로 매번 아이들 마음을 설레게 하고 엉덩이 들썩들썩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어린아이일 때는 그런 분위기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호기를 부려도 1만 원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한 번씩 호기를 부리면 10만 원쯤은 10분 안에 날아간다. 그런 나를 현실인식시키느라 아내가 늘 지친다고 했다. 사실 아내가 제지하는 건 현재의 재정상황 때문이다. 아내도 외국에서 지내본 경험이 있어서 갑작스러운 여행과 장기체류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언제든 '출발'가능하다고 했다. 누군가 초대만 해주면 'go go'라고 했다. 다만, 지금 재정상황을 반영하면 아무거나 함부로 사고 먹고 여행하면 안 될 지경이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꼭 약속은 지키잖아요!!!!"



  아이들과 '나중에' 또는 '내년에'라고 하는 말들을 반드시 지키기는 한다. 그걸로 '아빠는 약속 지키는 사람'이라고 우긴다. 신뢰는 쌓일 수 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필요할 때와 하고 싶을 때 해줘야 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모르고 엉뚱한 것을 해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필요한 것을 제때 해주지 못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 



  정말 서로 상처받고 내가 굳은 다짐을 하게 된 "나중에" 해프닝 사건이 생겼다.  

분당에 살면서 인천건설회사에서 기술영업을 했다. 주야 주말 없는 현장일에 맡은 처음 업무에 최선을 다하느라 바빴다. 사회복지사에서 업종전환을 한 탓에 매 순간 공부하며 현장 일도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들은 것 하나라도 잊지 않고 업무 하려고 수첩을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소문도 나 있을 정도였다. 밤낮 바빴고 스트레스도 극심했다.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수업 선물로 받아 온 "고무줄 동력기"를 보여줬다. 가족과 함께 만들라고 들었다는 아이 말에 "나중에 하자"라며 미루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시간이 흘러 분당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고무줄 동력기'를 잘 챙겨서 이사를 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쯤에 서랍 맨 위에 6년간 고이 모셔둔 "나중에 함께 해야 하는 고무줄 동력기"가 떠올랐다.

  "이거 만들어볼까? 아빠가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네. 오늘 할까?" 이런 말에 아이는 마지못해서 "네. 그래요."라고 했다. 유치원 때 받은 것을 초등 고학년때 하게 되었으니 아이는 사실 '어이없네'라는 마음이 들 것이지만 아빠에게 최선을 다해 맞춰주었다. 



  뼈대를 이루는 댓살을 스틸튜브로 연결하여 주날개를 만들었다. 꼬리의 보조날개들도 차근차근 조립해서 결합했다. 얇은 종이를 커팅해서 주날개, 꼬리날개, 보조날개들을 완성시켰다. 이제 고무동력을 이용해서 날아가는 동력기가 얼추 모양이 완성되어 갔다. 아이는 그래도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하고 직접 해보라는 제안에 망가지면 안 되니까 '아빠가 만들어줘요.'라고 하기도 했다. 프로펠러 고리에 주동력원 고무줄을 연결했다. 늘어진 고무줄을 꼬아주기 위해서 프로펠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마무리다. 미안하다. 하자고 해놓고는 너무 오래 걸렸다." 내심 늦어도 약속은 지킨다는 아빠의 모습을 챙긴 것 같아서 스스로 뿌듯했다.(그러나, 많이 심했다. 6년 후 지킨다는 것은...) 

"아빠가 맨날 나중에~ 나중에~ 하시더니 약속은 지키시네요."

반신반의의 반응으로 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너 만할 때 대회도 엄청 많았어. 진짜 오랜만이네. 야아.... 신기하네..."

갖은 너스레를 떨며 고무줄이 팽팽하게 꼬여서 날아갈 준비가 되도록 프로팰러를 계속 돌렸다. 기분이 좋아서 더 빨리 돌렸다.


 

  고무줄이 꼬이고 꼬이고 슬슬 팽팽해지면서 날아갈 준비가 마무리가 되어간다. 조금만 더 꼬아서 나갈때쯤

"휙~~ 휙~~ 휙~~ 뚝!"   "뚝!!!" 

고무줄이 팽팽히 잘 감기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어. 이런"

"아빠. 뭐예요?"

아이는 놀라고 나는 당황했다. 고무줄이 오랜 시간 월(6년)을 박스 안에서 지낸 탓에 삭아서 꼬인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다. 고무줄이 삭을만한 시간이긴 하다. 아이는 황당해하는 표정을 짓고 실제로 날릴 수 없다는 실망감과 함께 아빠가 맨날 '나중에'라고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지켜주는 게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 아빠. 진작 해달라니까. 그게 언제예요.... 이게 모예요?"

"아휴. 남편. 언제 하나 언제 하나 했는데 그렇게 되다니. 어떻게요?"

"미안해요. 고무줄이 아예 삭았어요."

"다시 사서 날리러 갈까?" " 아니에요. 싫어요." 

"남편. 그만해요."



  재정상황이 힘들다고 은근 "나중에 해! 꼭 해줄게."라며 늘 미루던 습관이 드디어 일을 만든 것이다. 

재정이 힘든 것도 아닌데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던 탓에 버릇처럼 미룬 것이다. 

"나중에 하자해도 꼭 나중에 하자나. 아빠가 약속한 건 지키긴 했어."라고 하지만 "고무줄 동력기"사건으로 '꼭 약속을 지켜주는 아빠'에서 '미루는 아빠'가 되었다.

이 "고무줄 동력기"사건으로 마음에 결단을 하였다.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하자!"

  해주고 싶지만 재정상황이 안 좋아서 못해주는걸 '나중에 해줄게'라고 하지 않기. 안될 것 같으면 아이들에게 안 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주기. 괜한 호기 부린 말들로 아내가 난처하지 않도록 아내와 사전 계획된 것이나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면 함부로 제안하지 않기. 까지 더불어 결단했다. 


"고무줄 동력기"사건이 내게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여전히 아이에게 미안하다.  

 





언젠가 둘째 아이가 내게 말했다.

늘 하듯이 "응.. 나중에 해줄게!"라는 말에

"아빠. 알아요. 지금 우리 돈 없어서 못하는 거잖아요. 그냥 말해본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 "나중에"라고 했네. 

아이들은 이제 말 안 해도 다 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그렇지만 못해주는 게 미안해서 또 '나중에 해줄게'라고 하고만 싶고, 들킨 것 같아서 여전히 '숨고 싶다.' 



출처: Unsplash의 Daniel Ho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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