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국
명절이 되면 그리운 음식이 있습니다.
이제 먹지 못해서 그 음식이 더 그리운 것 같기도 합니다.
탕국
어릴 때부터 명절 때 제사에 참여해서 꼬맹이때부터 같이 절을 하고 절을 하고 절을 하다가 새해에는 세뱃돈을 받고 추석 때는 친척누나들과 제사음식을 먹고 나면 여의도로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그랬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명절 때 시작은 제사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제사 때 올라왔던 음식들 모두 올려놓고 밥그릇 넘치게 담은 밥그릇을 앞에 놓고 탕국을 가득 담은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는 '어른 자리'라고 하셔서 작게 담은 밥그릇과 조금 담은 탕국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탕국을 꼭 두 번 달라고 해서 탕국 속에 담긴 두부와 건더기들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늘 명절이면 떠오릅니다. 그 생각이 나면서 "너는 이 집안의 장손이니 많이 먹고 잘 돼라."라면서 부담 가득한 덕담도 덤으로 받았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그러다 보니 제사 후 먹던 각종 전들, 떡이 그렇게도 맛있고 먹을 때마다 행복했습니다. 집에 갈 때면 가득 담아서 싸주는 명절음식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커가면서 그 음식이 만들어져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명절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음식 안 먹어도 좋으니까 안 만들고 '우리 엄마도 웃고 웃다가 집에 가는 길이면 좋겠다.'라며 탕국과 각종 전들을 먹기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어른들이 많이 연로해지시고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게 되었고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소원대로 제사 음식을 먹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엄마도 웃고 지내게 해 주세요.'가 이루어진 명절이 되니까 그저 행복했습니다. 단점은 그렇게 칭찬 많이 들으면서 먹고 먹던 탕국과 각종 전을 먹지 못하게 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서 아내를 만나서 삼 남매까지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친가는 제사를 드리지 않게 되었서 탕국과 각종 전을 먹을 일이 없고요. 처가도 제사를 드리지 않기에 탕국과 전들을 먹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이어지면서 삼 남매와는 설날, 추석에 명절 음식이라고 말하는 탕국, 고봉밥, 각종 전들을 먹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명절이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먹던 명절 음식을 사서 간단히 챙겨 먹는 정도로 지내면서 함께 만나면 먹고 싶은 음식을 나눠 먹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허전합니다. 희뿌연 탕국에 밥을 말아서 먹고 '더 주세요.'라고 해서 한 그릇 더 뜨끈한 탕국에 밥을 말아서 먹고 나면 칭찬을 받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그립기도 합니다. 엄마가 밤새도록 둘러앉아서 만들고 지지고 부치고 허리 못 펴고 엎드려있다가 새벽부터 시작되는 제사상을 또 준비하는 것을 안 봐도 좋지만 맛있게 먹던 그 음식을 못 먹는 허전함이 있기도 합니다.
더 이상 탕국을 먹을 일이 이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애초에 먹어보지 못해서 먹으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찾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된장찌개, 김치찌개처럼 끓여서 먹을 일도 없고요.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음식인데 그 음식을 그렇게 먹고 또 먹으면서 좋아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먹는 음식이라서 그럴까요? 글을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탕국 두 그릇, 밥을 두 번 말아먹으면서 "너는 우리 집안 장손이니 많이 먹어라. 잘 먹으니까 좋네. 잘 먹고 훌륭한 사람 돼라."라는 칭찬과 덕담을 맘껏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들으면 칭찬받는 것 같아서 명절 때마다 두 그릇이상 꼭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생각나고 생각나는가 봅니다.
이제는 거의 먹지 못하는, 아니 안 먹는 탕국을 아이들과 오랜만에 박물관에 갔을 때 우리 고유의 명절 제사음식 모형을 보고 설명해 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사상 언저리에 고봉밥옆에 놓인 뿌연 탕국 그릇을 보면서 칭찬을 많이 받으면서 먹던 탕국이라면서 은근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부모세대에서 자녀세대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음식이 아니게 된 탕국을 한참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탕국, 아빠가 너만 할 때는 말이야~~"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아빠가 말하니까 '그렇군요.'라고 듣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탕국을 어디선가 나와도 그 맛이 이상해서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안 되거나 다음 세대와 안 맞아서 이제는 안 먹게 되는 음식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부모세대와 지낸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와 함께 이어서 살아가면서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명절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어릴 때부터 드시던 각종 명절 음식을 사서 먹는데 그 음식들을 먹을 때면 각종 전을 한 입 베어물 때마다 그전을 작은 입으로 베어 물면서 낄낄거리던 어린 시절 제가 생각나서 재밌기도 합니다. 분명히 어른들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머리와 어깨까지밖에 상 위로 올라오지 않아서 밥을 먹기가 힘들었던 때도 생각나고요. 어른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많이 먹어라. 탕국을 그렇게 좋아하니 신기하네. 많이 먹어라. 쑥쑥 크고"라면서 칭찬을 늘 받았던 것이 다시 떠올라서 혼자서 웃어보곤 했습니다.
오늘은 이제 쉽게 먹지 못하는 탕국, 그 탕국에 얽힌 저의 꼬맹이때 향수가 생각나는 각종 전을 한 입 베어 물면서 떠오른 생각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향수와 감회를 아이들에게 "~라테~"라고 무용담처럼 말하던 제가 너무 재밌어서 이번에는 조용히 먹었습니다. 급하게 먹느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색 않고 우걱우걱 먹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소울푸드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한 입 베어물 때마다 입안에 들어가는 음식과 더불어서 추억이 떠오르면서 '지금, 잠시' 현실과 다른 생각에 빠져드면 소울푸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게는 어린 시절 즐겨 먹고 늘 칭찬받곤 했던 탕국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억지로 안 되는 것도 있다.
탕국과 각종 전은 명절 때마다 먹게 되던 음식입니다. 어릴 때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 친척집에서 명절기간 동안 어른들이 만들어서 식혀놓느라 대바구니 쟁반에 널어놓으면 지나갈 때마다 손으로 집어먹고 웃으며 지냈던 음식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지지면서 만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그것보다 더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아서인지 그런 음식을 아이들은 챙겨 먹지 않습니다. 먹어도 한 두 개 '이런 음식이 있구나!'라고 먹어 볼 뿐입니다. 억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같이 먹던 음식을 다음 세대에도 먹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때가 있지만 안 되는 건 안될 때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명절이면 밤새도록 음식을 만드느라 엄마가 다리 한번, 허리 한번 펴지 못하다가 바로 새벽부터 이어지는 제사상에 어른들과 절을 하면서 음식을 나르고 있는 엄마를 곁눈질로 보면서 얼마나 많이 제사음식 '더 이상 먹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탕국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어린아이였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을 몇십 년을 지나 이제는 명절이면 탕국을 그리워하는 삼 남매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런 추억을 제 손과 입과 마음에 건네주신 엄마,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그러면서 삼 남매에게는 명절 때면 생각나게 하는 추억을 어떤 것, 어떻게 전해주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늘 읽어주시니 아이들과 먹고 느끼고 감동하고 감사하고 그런 음식 중에 '탕국'에 대해서 나누기도 해보게 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덧붙여서:
모두에게 명절 연휴가 행복하고 평안한 시간이었기를 소원하면서 지냈습니다.
벌써 연휴 막바지라서 아쉽기도 합니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견디기 힘든 시간으로 연휴가 의미없는 분이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연휴와 상관없이 일을 하는 분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까망 하늘 새벽 텅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때마다, 다시 컴컴한 별빛밤 텅빈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면서도 한 분도 힘들지 않은 연휴기간이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면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긴 연휴,
몸과 마음이 아픈 분이, 아프더라도 덜 아프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연휴기간 마지막까지 소원해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찬바람이 얼굴과 반팔티셔츠 팔에 스치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것은 곧 갑자기 추워질 것인데..이런 계절 변화때문에 아픈 분이 생길까봐, 아픈 분이 더 아플까봐 염려도 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많이 없었으면 합니다.
연휴막바지입니다. 저의 작은 소원이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연휴막바지이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아시지요? 진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Markus Wink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