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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아이와..아빠

아이돌

아이들이 아이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다.

남돌들의 말랑말랑 미소와 여돌들의 셔벗 같은 매력과 댄스에 점점 빠져가고 있다. 옷, 화장, 말투, 행동 모든 것을 아이들이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딸들은 아이돌 영상을 보면서 춤을 따라 하고 노래가사를 거의 외운다. 심지어 학교에서 방송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포카(포토카드)를 열심히 모은다. 최고로 좋아하는 사진들은 차곡차곡 별도의 포카앨범에 분리 보관한다. 자기 눈에 예쁜 아이돌 언니들의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한다. 덩달아 그 언니들을 따라 하는 중고등 언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도 한다.



화장도 너무너무 하고 싶어 한다. '아직이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틴트라도 사서 입술을 샤이니하게 하는 중이다. 앞머리를 가지런히 잘라서 '뱅'스타일로 하고 다닌다. 눈을 수시로 찌르지만 전혀 문제없다고 말한다. 이제 모든 것을 "이쁘네"라고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아줄 때가 온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다가온 현실 앞에서는 관대하고 너그럽지 못하다.



잠깐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나 또한 TV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연예인이 생기면 브로마이드를 사서 모으고 벽에 붙이면서 즐기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얻기 위해 잡지는 사자마자 버리기도 했다. 원하던 사진만 가지고 오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이 첨단 문화를 통해 더 고급스럽게 팬덤을 즐기는 것뿐이다. 동일한 나이에 동일한 감성인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용돈이 허락하는 선에서 잡지, 브로마이드, 음반들을 어느 정도 사서 보고 듣고 즐기고 했었다. 자기 소장품들을 애지중지하면서 서로 돌려보면서 대화할 때면 더 이상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워했던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이 이제 똑같은 것들을 하려는데 무조건 하지 말라고! 적당히 하라고! 먼저 선수를 치면서 심지어 혼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내로남불"


아주 못된 마음인 것이다. 내가 했던 행동들은 풋풋하고 어린 마음의 한때 추억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지금! 아직 할 행동이 아니다면서 가능하면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행동들은 교육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좋지 못한 것으로 인정한다.



바깥에 외출했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음식점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에 아이들은 흥얼거리며 외운 춤들을 춘다. 쇼핑몰에서 지나가다가 큰 거울을 만나면 이내 춤을 추면서 자기 모습에 심취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   

"그만해! 사람들 있는데서 창피하게! 그만해!"라고 내가 말하니까 "조금 조심하자!" "괜찮아?"라며 아내가 아이를 다독인다. 아이들은 금세 뻘쭘한 표정과 행동을 하며 움츠려든다. 그리고, 아내 뒤로 슬쩍 숨는다.



넓은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마음과는 다르게 말과 행동은 "그만해!!"라고 하는 것이다. 그즈음의 나이 때 나도 길거리에서 쇼윈도를 거울삼아 브레이킹 했었다. 그랬던 아빠가 같은 나이의 아이가 하는 행동에는  전혀 인정해주지는 못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하루 일이 순탄하게 진행된 덕분에 기분 좋게 금요일 퇴근을 했다. 그 여세를 몰아서 교보문고에 들렸다. 책을 사려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에게 아이돌 굿즈를 사주고 싶었다. 다 같이 책을 사러 갔던 날에 아이가 한쪽 코너에 현존하는 아이돌들의 앨범, 굿즈, 포카가 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책 사러 온 날이니까 책만 사서 얼른 가자고 했었다. 지금의 좋은 기분을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던 아이돌 굿즈를 사주면서 이어주고 싶었다. 그 당시에 무심한 척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의 다양한 굿즈들을 눈여겨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아이돌 진열장에 의기양양하게 다가섰다 '아뿔싸!' 그런데, 아이가 만지작거리던 아이템들은 전부 없었다. 이미 판매가 끝난 것이다. 아이가 가지고 싶어 했을 때 그냥 사주면 아이와 아빠 모두 기분 좋고 행복했을 것을 말이다. 초특급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아쉬워하는 마음이 허탈함으로 바뀌어서 여전히 그 진열장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뒤에 아이돌 상품 진열장을 한번 더 만지작거리 고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가볍게 아이돌 댄스 스텝을 밟으며 아이돌 포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뭔데? " 엄마가 아이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 xxx 포카. 사고 싶어. 마니 앨범도 사고 싶어. 엄마. 엄마. " 그 말을 다 들은 엄마는 혼내는 것이 아니라 귀여워하며 다음에 사자고 하고 잠깐 안아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잘 타일러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 충격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잘 이해시키는 부드러운 엄마의 성품"


생각해 보니 아내도 그렇게 아이들을 잘 타이르는 편이다. 똑같은 상황에 나와 아이가 오버랩되었다.

나는 혼내기보다 단호하게 말해줘야 당장 상황에서 잘 단념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포 같은 설득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늘 아이들이 그런 선택의 상황이나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사지 못한 채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잘  타일러서 데려갔던 엄마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나는 너무 창피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나의 마음에 죄책감과 미안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이에게 깜짝 놀랄 아이돌 선물을 사지 못한 허탈감도 더 심해져서 어깨가 축 처진채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아이의 마음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자.'
 


집으로 들어서면서도 아까 느꼈던 마음이 남아 있어서인지 나는 늘 하던 대로 아이들에게 '배꼽인사'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빠 미소로 웃어줬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 다녀오셨어요." 하고는 얼른 TV의 보던 영상을 이어서 보려고 달려갔다. 아이들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136




더하여서: 아내는 아이들이 이런 것을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이 아빠 영향이라고 한다. 솔직히 흥 많고 감성적인 게 좋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음악과 미술과 자연에 많이 노출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충분히 느끼고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다양한 음악을 듣게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댄스영상들을 보며 함께 즐기기도 했었다. 그런 것들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음악장르가 다양하더라도 취향만 맞으면 신나게 즐기는 편이라고 했다. 내 탓이라고? 일부분은 인정했다.


출처:  Unsplash의 Angelos Michalopou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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