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아침에는 홑겹 옷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두툼한 니트나 점퍼를 입은 사람들과 스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쌀쌀한 계절이 오겠구나 했는데 이미 와버렸습니다. 또 금세 다가올 강추위의 매서움을 상상해 보면서 미리 긴장해 볼 작정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를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노년층과 유아들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 지내게 되는 일상 속에서 여전히 곳곳에 숨어 있는 ‘깨알’들을 만나게 됩니다. 추운 날에 따뜻한 차 한잔이 몸을 녹이고, 더운 날 한 잔의 콜라가 청량감을 전해주듯이 ‘깨알‘들은 늘 오늘의 재미를 만들어 줍니다. 오감이 살아 있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느낀 것들과 상상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1. 타이어.
근처 타이어가게 앞에는 늘 일정한 시간에 재생타이어 수거 트럭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재함 한가득 실려가는 타이어들을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마치 철창 속에 가둬서 끌려가는 것 같아서 불쌍해 보였지만 재가공되어 우리 일상생활 여기저기에 보였던 때가 생각나게 되면서 기대와 또 만날 것을 기약하게 됩니다. 재생은 곧 Reborn이니까요. 모양만 달라질 뿐이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실려가는 타이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이제 가는구나.
어제 밤새 기다리더구먼.
살려줘.
우리 끌려가~
아니야.
너네 새롭게 태어나려고
가는 길이야.
놀이터, 길거리, 구석구석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자리 잡았더라고.
즐겁게 출발해!
멋지게 돌아와.
빠이~
By Dd
#2. 생선
하수 그레이팅에 생선머리와 꼬리가 더해진 덕분에 쓰레기나 꽁초를 버리기보다는 함부로 더럽히지 않고 싶어지는 구역으로 느껴졌습니다. 눈이 똥그래지면서 "햐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유럽의 공공 미술과 경기도 지역의 횡단보도 앞 '노란 발자국 그리기'같은 인식개선 캠페인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이런 캠페인 미술을 만나게 되면 너무 짜릿합니다. 그래서, 잠시 길을 멈추고 서서 박수를 쳤고요. 사진을 얼른 찍으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이런 캠페인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도 해 봅니다. 더 많은 인식개선 캠페인 미술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도 동참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너 덕분에
하수구가 쓰레기
적어지겠어.
마치 살아있는 생선이
떡하니
누워 있는 느낌이야.
라바 만화를 볼 때도
그런 느낌이었지.
닌자거북이 볼 때도
그런 느낌이었지.
이제 깨진 창문 같지 않아.
깨끗하게 써야 할 것 같은,
아껴줘야 할 것 같은
느낌
앞으로도 여기저기
누워 있어 줘.
우리가
함부로
쓰레기
버리지
않도록!!!
by Dd
#3. 닮은 친구
모두가 요리를 먹고 싶어 한 날이었습니다. 주문 개수가 많다 보니 배달가방이 두 통이나 도착하였습니다. 요리를 모두 건네주시고 '주황색 환타 한 병'을 마지막으로 건네주실 때 아이들이 쾌재를 불렀습니다. 받은 음식을 배치하고 수저를 놓으면서 식사준비가 되는 동안 아이들은 환타 한 컵씩 받아 들고 건배 후 마셨습니다. 마시고 난 후의 아이들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럴 수가 아이들이 기대했던 ‘공짜 환타'가 아니라 '탑씨'였습니다. 아이들은 속았다며 '탑씨'를 주신 것에 실망하였지만 탄산음료를 먹는다는 것에 웃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먹고 싶었던 중식 요리를 먹으며 그 허전함을 달랬습니다.
맛있겠다.
탕수육.
짬뽕.
만두.
벌컥벌컥
켁.
이게 모지?
어. 뭐야
환타가 아니잖아~
탑씨?
이런. 아잉.
이런 게 어딨어.
아이들은
많이
놀랬다.
서운해했다.
서비스 음료.
그 둘은 비슷했다.
맛은 안 비슷했다.
아뿔싸
아이들의 기대에 비해
실망도 컸다.
어찌 보면
너무 환타에 익숙해져 있었다.
by Dd
더하는 말: 절대 음료에 대해 비하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환타로 알고 기분 좋았다가 먹고 나서 기대와 다른 음료수를 먹었다는 것에 잠깐 실망한 모습이 재밌어서 적어 보았습니다. 탄산음료의 맛은 회사마다 제각각일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한 가지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하고 기발한 음료가 나오길 기대도 해 봅니다.
#4. 꽃불
어느 학교 외벽에 금색 깃대에 꽂힌 빨강 장미가 엄청 이뻤습니다. 벽에 꽂힌 횃불 같기도 했고요. 벽 색깔과 깃대의 대비만으로도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빨강 장미가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걸으며 지나가는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느낌을 잘 적어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매력이
황금색 원피스 덕분에
더 부각되네요.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네요.
눈길이 가네요.
그 향기가
은근히
멀리 더 멀리
퍼질 것만 같군요.
매력 있네요.
빨강 장미
그대.
by Dd
#5. 응급조치
아이들과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돌며 놀았습니다. 걸어 다니며 놀기를 끝내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간식을 사서 들어갈 생각에 더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일이 터졌습니다. 아이의 슬리퍼가 위아래로 분리되었고 더 이상 걷지 못했습니다. 보도블록 위에 멈춰 서서 난감해하는 아이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망가진 슬리퍼를 얼른 수습할 아이디어를 구상했습니다. 함께 있던 딸의 머리끈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받은 머리끈을 이용해서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피식‘웃어줬습니다. 집까지 남은 거리를 무사히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역시. 아빠'라고 엄지 척해줬습니다. 그런 칭찬과 ’ 엄지 척‘도 제게는 일상의 깨알입니다. 그저 5초 우쭐했지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아. 아빠.
슬리퍼가
떨어졌어요.
어. 그러네
어쩐다?
흠. 해보자.
머리끈? 묶을까?
그래.
머리끈 좀 빌리자.
걸어 봐라.
일단 걸을 만 하지?
머리띠 고맙다.
아빠 최고!!
나도 고맙다.
머리끈을 준 둘째에게,
응급조치받고 웃어주는 첫째에게,
고맙다.
By Dd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얼른 찍고 적은 것처럼 일상 속에서 다양한 것들이 여전히 “깨알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래서, 매일이 기대되고 걷게 되는 골목과 건물 주변들은 꼭 두리번거리며 다니게 됩니다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보는 것은 아니지만 참 재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상에 매번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에도 특별한 감사를 하게 됩니다. 아! 가끔은 단속반원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전혀 이해 못 할 것들을 찍기도 하니까요. 이번에도 여기까지입니다.
모든 분들의 상황이 제각각이지만 적어 놓은 깨알들이 아주 잠깐의 웃음거리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추워지고 더 각박함을 느낄수록 더 흐뭇한 깨알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