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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래서 그랬어요. +24

맛 좀 보세요..

아이들과 여전히 편의점 가는 것을 즐깁니다. 글을 처음 쓸 때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들과의 편의점 쇼핑을 좋아합니다. 각 편의점마다 특이한 기획상품 때문입니다. 비쌀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짜릿한 재미를 느낍니다.

이럴 때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맛 좀 보세요.


어떤 편의점은 기발한 기획상품을 개발해서 시판하고요. 어떤 편의점은 외국의 특이한 과자들을 수입해서 판매하고요. 어떤 편의점은 잘 나가는 타사 상품을 벤치마킹해서 기획상품으로 파는 곳도 있고요. 시판되는 상품을 접하는 것이 이제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취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의류회사 일할 때 타브랜드 신상품조사차 매장순회하던 느낌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각 편의점의 매장배치에 따른 편의성, 기획상품에 대한 호불호, 선호상품 유무에 따라 편의점 선호도 조정, 도시별/지역별/동네별 편의점의 제품구성차이에 대해서도 은근히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구매 목적에 따라 선호하는 편의점이 다릅니다. 아이들과 같이 다니면 꽤 흥미롭습니다.



그런 편의점 쇼핑에는 사실 소소한 재미와 함께 저의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접하는 데 있어서 쉽게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병행사용'합니다. '병행사용'이라고 한 이유는 제일 우선되는 것이 아빠의 과한 간섭이나 통제를 고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우! 새로운 간식이네. 재밌겠는데?"

"아빠! 새로운 거 나왔으니까. 먹어봐요."

"그럴까?"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면 일단 성공입니다. 아이들이  '해보겠다.'면서 행동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새롭거나 어색한 것은 절대로 사지 않았습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큰일이 생기지 않기도 했고요. 쉽게 도전하지 못하거나 용기 내지 못하고 주저할 때는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입 먹고 아니면 말고, 못 먹겠으면 아빠한테 주면 되니까~~~"


그렇게 편의점 쇼핑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한발 더 디뎌보는 연습들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큰아들이 꼭 한 마디씩 합니다.


"아빠! 맛 좀 보세요?"
"한 입 드셔보세요~제발"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간식 도전'할 때마다 전부 '맛 좀 보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아빠! 배 부르다.' '아빠는 이미 먹어본 거라서 권했다. 도전!!' '안 먹는다. 아빠 건강생각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빠! 제발요. 한 입 드셔보세요. 소원이에요~~~"

"으이그.."


못 이기는 척하면서 한 입 먹어줍니다. "맛있네." "오호! 색다르네"라고 말하면 큰아들은 그제야 우적우적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 대화가 요즘 들어 더 많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맛 좀 보세요 - 우리 것만 사지 말고 제발 아빠 것도 사요~~


아빠를 신경 쓰는 큰아들의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예전부터 하는 버릇이지만 아이들과 다니면서 간식을 사면 여전히 제 것은 잘 사지 않습니다. 솔직히 돈이 풍족하지 않아서 아이들에게만 해줍니다. 저는 여전히 가능하면 포기합니다. 아직 돈을 제대로 못 번다는 마음도 한 몫합니다.



그런 것을 이제는 알아챈 큰아들이 늘 아빠가 사나 안 사나 지켜봅니다. 만약 아빠가 간식을 골랐다면 이제는 아빠 양에 맞는 것을 제대로 골랐는지도 살핍니다. 아빠 눈치 보며 혼날까 봐 조마조마하던 큰아들이 중학교를 가더니 아빠를 신경 쓰면서 은근히 챙기려는 모습에 감동합니다. 미안하기도 하고요.


 



큰아들이 태어난 때가 생각납니다. 예쁜 딸이 첫째가 되기를 소원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임신이나 아이 성별이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선물'인 것입니다. 그렇게 세 아이 성별은 제가 원했던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인생사건이었습니다.



그런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빠가 아이폰4 수준이라면 아들은 아이폰 16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자녀이길 소원했습니다. 저보다 피아노를 잘 치길 바랐고, 저보다 키가 크길 바랐고, 저보다 더 그림을 잘 그리길 바랐습니다. 저보다 수학을 더 잘하고, 축구나 농구도 잘하길 바라고요. 그런데, 아이폰 16이 될 줄 알았던 큰아들이  점점 아이폰4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인 건 아직 중1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도록 물심양면 부모로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꾸 '아빠 같은 모습'이 보여서 속상할 때가 많은데 다행히 '아빠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마음씀씀이가 아빠보다는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맛 좀 보세요. 제발..이라는 표현은 우리 것만 사지 말고 아빠 것도 사요. 제발이라는 표현입니다.

아빠가 자기 것을 또 안 살 때면 "야!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비싼 것 좀 사지 마라!"라면서 두 여동생을 혼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는 다들 내보내고 계산하는데도 아들은 은근슬쩍 옆에 와서 계산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맛있게 양 많이 먹으면 얼마인지, 어떻게 계산하는지, 되게 좋은 데서 먹으면 얼마나 나오는지? 슬쩍 보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거 신경 안 쓰면서 맘껏 먹고 그저 순수하게 자랐으면 좋겠는데 넉넉한 재정이 아닌 현실을 알아채고 그 현실 때문에 '해 보고 싶은 것'을 '안 할 것'으로 바꾸는 모습에 속상하기도 합니다.  

 


큰아들의 말을 번역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들의 따스한 마음이 고맙고 아들이 때로는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사회에 좋은 성품으로 진출하도록 '가이드'하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건 좋지만 동생들에게 너무 무리하게 말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하고요. 아직은 어린 녀석이니 순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요즘 들어 '바연남의 아들' '연남의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으쓱하는 순간보다 '남학생의 아빠' '여학생의 아빠'로 불려지고 '칭찬'을 듣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아빠보다 더 좋은 성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수록 제가 할 일이 더 명확해집니다. 빨리!! 더 좋은 아빠!! 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발행글을 올리는 시간이 이런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라서 처음에는 너무 창피하고 화끈거렸습니다.  이 발행 덕분에 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이제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런 글을 읽고 공감과 격려해 주시는 분들의 손길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람 없이  날리는 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Alec Fa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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