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언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하고 혼나면 바로 '죄송해요.' 하는 것을요.
죄송해요.
아이들이 잘못을 하고 '죄송해요.'라고 말하면서 조아리도록 만든 것이 모두 아빠의 탓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훈육을 위한다고 하지만 너무 엄하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상황이 자주 일어나면서 한편으로는 아빠에게 혼나는게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때마다 마음 절반이 '아이들이 공포심을 느낄까봐 미안'했습니다.
어느날인가 아이를 순간적으로 혼냈습니다.
아이가 거실에서 자기방으로 냅따 뛰었기때문입니다. 새집은 1층이라서 '층간소음'에 대해 예전만큼 조심하지는 않아도되긴 합니다. 그렇다고 함께사는 아파트에서 '피해를 끼칠 소음'에 대해 무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작년까지 처가살이때에는작은 발로 콩콩거리며 우루룩 뛸 때마다 혼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이사 나갈 집이라서 계속 거주해야 하시는 장인 장모님께 피해가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이웃 간의 정을 망쳐놓고 이사 나오게 될까 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남아서인지 아이들이 뛰면 여전히 혼낼 때가 있습니다. 딸들은 이제 1층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가끔 거실에서 자기들 방으로 달립니다. 사실 뛸 거리는 아닙니다. 뛰면 5초도 안 걸리는 거리니까요.
그런 아이들을 혼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아이들이 뛰다가 자기 발에 걸리거나 다리가 꼬여서 순간적으로 넘어집니다. 넘어지면서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하고요. 서로 부딪쳐서 다치기도 합니다. 살짝 긁히는게 아니라 멍이 심하게 들고 얼굴, 팔등 여기저기 다칩니다. 어떨때는 삐거나 타박상도 입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가끔 '후닥닥'뛰는 것에 대해 혼냅니다.
"뛰지 마라! 집에서 왜 뛰냐?!!!!"
"죄송해요."
"뛰지 마라.."
"네."
상황은 금세 끝납니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조용히 들어갑니다. 한동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럴때면 방해하지 않으려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상황이 종종 일어나다 보니 아이가 기분 좋을 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왜 여차하면 뛰니?"
"그냥요. 몰라요.."
"안 뛰면 안 되니? "
"그러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뛰고, 그러다보면 아빠한테 혼나죠...."
"그러지 말자"
"네."
"그건 그렇고, 왜 자꾸 죄송해요라고 그러니? 큰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음....."
"말해줘!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자꾸 그러니.. 아빠 맘이 힘들어.."
"음....."
"아빠가 말을 많이 하면서 혼내는 게 싫어서요."
"머어?"
아이를 붙잡고 이런저런 말을 듣다가 '죄송해요.'의 진짜 말뜻을 듣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죄송해요. - 혼나기 싫다. 무서운 상황이 싫다. 죄송하다 말해서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
죄송해요...라는 것은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아빠에게 크게 혼나거나 오래 혼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버튼'같은 말이었던 것입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한참 멍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실수인데도 일만 생기면 아이들을 혼내고요. 그러면 자동으로 '죄송해요.'라고 하면서 아빠에게 머리를 숙이는 이유를 드디어 알았습니다.
아빠에게 혼나고 싶지 않고, 그런 상황이 싫고, '죄송해요.'라고 말했더니 은근 더 이상 혼나지 않고 잔소리 길게 듣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죄송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때도 있다고도 하고요.
그런 '노하우'를 몸으로 익혀야 할 만큼 삼남매가 신경 쓰며 지냈을 시간들에대해 미안했습니다. 실수를 하던,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크게 혼내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주로 아이들이 기분 좋을 때 아이들이 했던 말에 대해서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줍니다. 말해줄때는 아빠도 기분 좋을때입니다. 아빠가 기분좋아서 무슨 말이라도 들어줄 '귀'가 보여야 아이들이 말해주기도 합니다. 큰아들은 아빠에게 엄청나게 혼나고 나면 '아빠 싫어'라는 느낌을, 두 딸들은 '아빠 밉다.'라는 느낌이 든다고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돈 벌고 아이들 사랑한다고 노력했는데 자꾸 엉뚱한 부분에서 실수하면서 '나는 가정에서 냉장고보다 못한 순위'에 머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어느 초등학교 아이의 말이 다시 생각나기도 하고요.
아이들 말을 관심가지고 번역하다보니 알게되는 것이 많아지면서 경각심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가정은 '서로 사랑하고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아이들이 '죄송해요.'라는 버튼을 누르지 않을 날을 위해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느 연예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먹어서 찐 살은 내가 뺀다.'처럼 '내가 모르고 한 행동들로 생긴 상처는 빨리 낫도록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를 마음의 키워드로 삼아봅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제 실수를 찾아내는 노력이 이어지도록 읽고 격려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