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젤리를 사면 한번에 다 먹거나, 몇번에 걸쳐서 나눠먹는등 제각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봉지에 젤리 한두 개가 남은채로 놓인 봉지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 봉지를 보게되면 나머지도 먹고 버리도록 하거나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보는 즉시 즉각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서 특이한 젤리를 샀습니다.
겉포장지의 그림이 모두 스티커로 뗄 수 있는 재밌는 젤리였습니다. 젤리 맛도 특이했고요. 한참을 지나 거실을 둘러보다가 먹고 안 버린 빈봉지인줄 알고 집었더니 젤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한 개...
그냥 버릴려다가 먹었던 아이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누구 거냐? 먹던지, 버려라!"
"오빠 꺼!"
"뭐?"
"오빠... 꺼... 요."
"그게 뭔 말이야!! 오빠는 없는데......"
"오빠 거 남긴 거예요."
막내딸의 대답에 대포 한 알 통째로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먹고 무심하게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포장지도 신기하지만 젤리맛도 특이해서 일주일간 집을 비운 오빠도 먹어보라고 남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얘가 그래요."
아내는 막내딸이 어리다고 아무 생각 없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 깊은 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콕' 찍어 덧붙여줬습니다. 그 말을 듣고나니 대포로 맞고 누웠는데 대포로 또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기분은 처참했습니다.
그런 막내딸은 지금 일주일간 집을 비운 큰오빠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젤리 한 개를 남기고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늘 이해안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더 많이 싸우고 시끄럽습니다. 사실 싸운다기보다는 일방적입니다. 큰오빠는 두 딸들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짜증을 내고 뭐든지 이해 안 되고 맘에 안 든다며 지적합니다. 둘째 딸은 막내딸에게 여차하면 소리를 지르고 뭐든지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막내딸은 오빠와 언니가 인생 최대의 적이라며 버럭버럭 대들다가 맞기도 합니다. 그렇게 싸우는 이유를 물어보니 상대방의 모든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했던 행동들인데 지금 그런 기억은 없고 동생의 모든 것이 이해가 안 되고 짜증만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전쟁터입니다. 그러면서 누구 한 명 자리를 비우면 그렇게나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그럽니다.
오빠 꺼! - 한 개 들어있는 젤리봉지를 버리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까먹고 쓰레기를 방치한 것이 아닙니다. 집을 비운 큰오빠에게 새로운 젤리를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막내딸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빠 꺼는 무슨' '니 거잖아!!' '버려!!'라면서 핀잔까지 줬던 그때의 저는 정말 몹쓸 모습이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짧은 단어인데도 번역을 해줘야 이해가 되었으니까요. '한국산 아빠'이지만 '한국말'을 이해 못 하는 아빠입니다. '마음'은 더 이해못하는 날이 많습니다. 또 인정했습니다.
가족과 지내다가 아이들말을 듣고 속뜻을 알고나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생각지못한 깊은 속뜻들이 있어서요.
이번에는 "오빠 꺼"라는 말에 뜨끔했지요. 그렇게 매일같이 오빠에게 혼나는대도 오빠가 없는 동안 자기들만 새로운거 먹었다면서 남겨놓은 막내딸의 마음을 알고 나니 전혀 이해못했던 저는 미안했습니다. 늘 짜증 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버럭'하는 아빠에 비해 삼남매는 맨날 서로 싸우면서도 누구 한 명 없으면 허전해하고 보고 싶어하며 '사랑'과 '의리'를 나누는아름다운 아이들이라서요.
요즘 아이들말을 번역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계를 통해 인생진리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고요. 또, '사랑받고 사랑주기 위해 태어난 선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만 지내는 환경에 따라 때가 묻고 변질되어 가며표현의 방법과 정도가 달라지는 것같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반성을 하고나니 '아이들이 엄청 사랑스러웠습니다.' 잠 잘때 모습뿐만 아니라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도 이쁘게 느껴졌습니다. 제 마음밭과 저의 안보이는 눈을 더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부록으로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저보다 발사이즈가 작고 키가 작을 뿐, 저보다 마음이 더 넓고 사랑이 더 가득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제가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다고도 느낍니다.
덧붙여서:
두 딸들은 오빠가 돌아오는 새벽에 일어나서 오빠 마중을 나갔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형광봉'을 '복귀축하'선물로 주겠다고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잠 덜 깬 비틀걸음으로 옆에서 걷는데 너무 이쁘고 귀여웠습니다. 제가 키우는 제 소유의 아이들이라기에는 너무 마음그릇이 큽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달며 공감이나 격려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는 더 노력하게 되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