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뭔가를 함께 하려고 아이들 의견을 수렴하다 보면 심플하게 의견이 정리될 때가 있습니다. 별다른 이견도 없고요. 일사천리 의견수렴과 신속한 진행이 말끔해 보이지만 사실 찜찜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좋아요!!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자녀와 발맞추며 도와주는 '가이드'역할보다 통제, 간섭, 지시를 주로 하는 '관리자'모드의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아이들이 아예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포기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부모가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하다면 여차하면 생기는 불협화음의 긴장감이 싫어서 자기 생각을 배제하고 그냥 맞추는 수동적인 성향으로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왠지 '그런 것'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석연치 않은 날이었습니다.
"얘들아!! 점심으로 왕돈가스 먹을까?"
"좋아요."
"오랜만에 왕돈가스 먹으면 신나겠지? 엄청 큰 접시에 꽉 차는 사이즈란다. "
"좋아요.."
"네......"
그런 대화 후, 모두 저녁으로 커다란 접시에 나온 왕돈가스를 우적우적 먹었습니다. 근데 먹다 보니 첫째는 나름대로, 둘째는 먹긴 하는데 왠지, 셋째는 생각보다 잘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고 이상했습니다. 돈가스를 다 먹고 집으로 오는내낸 갸우뚱했습니다. 아이들 먹는 걸 보는 아내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고요. 아이들도 맛있는 걸 신나게 먹었다는 표정보다는 '먹었다. 집에 왔다. 끝'의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왕돈가스 맛이 별로였냐?"
"아뇨.."
"그래. 알겠다. 이제 너희들 원하는 대로 실컷 놀아라!~"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 이제 너희들 자유다!'라고 외치고는 뭔가 새로운 공약을 선포한 군주 같다는 묘한 느낌으로 방에 들어왔습니다. 뭔가 명쾌하지 않고 떨떠름한 기분이 들어서 진짜 별로였습니다.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런 느낌조차도 예전에는 몰랐었기에 아내가 늘 마음이 먹먹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든 것만도 '다행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여보!~ 애들한테 오늘 '왕돈가스'가 별로였나요?"
"애들요? 그럴 수도 있죠."
"왜요?"
"요새 학교 급식이 늘 튀김류예요. 나도 애들 먹으라고 돈가스, 치킨, 핫도그 등등 많이 주문하고요."
"치!!!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면 되잖아요!!"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슬슬 화가 났습니다. 아니 화가 나면 안 되는 것이지만 화가 났습니다.
"아니이!! 별로이면 말을 하면 되잖아요."
"당연하죠. 말을 하면 되죠. 그렇지만 애들은 말 안 해요."
"좋다고 했잖아요."
"좋아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뭐요?"
"아마 아빠가 제안한 거니까 맞춰준 걸 거예요. 모르겠어요? 우리 애들은 아빠를 맞춰준다니까요. 애들이 기특해요."
"...............................(아무 말도 못 한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
좋아요 - 아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맞출게요.
애석하게도 아내와 대화하고 나서 '혹시'가 '역시'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도 일이 전부 끝나고 나서야 상황파악이 된 것입니다. 그런 대화 이후 방에 있는 아이들은 봤더니 그냥 누워 있는 아들, 포토카드 만지작거리는 둘째, 혼자서 인형 놀이하는 막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고 어린아이들이지만 아빠보다 더 넓은 바다마음을 가졌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아빠가 제안한 대로 동조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투명한 수조에 페인트를 넣고 마구 흔들어서 구정물로 만드는 손처럼 아이들의 감정을 마구 흔드는 아빠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에 반성을 했던 날입니다.
좋아요..라는 말은 좋아서 좋은 게 아닙니다. 아빠를 배려해서 아이들이 맞춰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엄청 사랑해서 맞춰주는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함께 있는 아빠와 불편한 게 싫어서입니다. 강자에게 약자가 맞춰주는 구도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뭐든지 아빠가 제안하고 같이 해주면 늘 행복하고 신나는 일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예전에 하던 것이 싫어질 수도 있고 이제는 싫을 수도 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런 것들은 모두 배제된 생활이 진행되도록 아이들은 반항모드로 돌변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여전히 아빠의견에 동조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아직도 절대권력자 같이 느껴지는 아빠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절대권력자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노력하고 있는데 이미 수없이 겪은 아빠의 이미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긴 합니다.
언젠가 아이가 기분 좋을 때 해준 말이 있습니다.
"아빠한테 대들거나 아빠가 하려는 거 싫어했다가 엄청 분위기 안 좋아서 힘들었어요. 엄마는 안 그런데..."
그랬던 것입니다. 아빠는 제안한 것을 동조해주지 않으면 애써 생각해 낸 것인데 반가워하면서 함께 하지 않는다고 짜증 내고 서운해하면서 삐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종일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집이 작아서 어디 피할 수도 없고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보! 이제는 내가 대놓고 그런 내색 안 하잖아요." 그렇게 말을 했더니 아내가 말해줍니다.
"내색은 안 하죠. 근데 남편 표정이나 눈빛이 다 말해줘요. 아주 훤히!!!"
화내거나 짜증내서 분위기 망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물고 있는 자체도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화났거나 삐진 것으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한 움직임을 아빠가 발맞춰주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천방지축 좌충우돌을 아이들이 맞춰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당혹스럽고 미안했습니다. 아이들과의 쿨한 대화는 실제로 원만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또 미안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울로 제 얼굴을 들여다봤습니다.
제 얼굴은 보리물결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 흔드는 저녁즈음의 평온한 밭 느낌보다는,
온갖 잡초와 꽃이 혼재되어 있고 잔잔한 바람에도 휘날리느라 분주한 덤불밭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평상시 평온하고 안정감 있고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아내가 왜 힘들게 사는지, 아이들이 왜 늘 불안해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소원해 봅니다. 파란 하늘에 떠 있으면서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는 하얀 뭉실구름처럼 평온하고 온유한 아빠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아이들 말을 번역하면서 저를 직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빠 모습의 괴리를 제대로 느끼는 시간이었고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것에 대해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글에 관심을 주신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Austin Ne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