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노랑참외처럼 밝고 즐거운 영화 20편을 봤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느껴지는 영화아닌 여영화였습니다.
아이들과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일이 참 많이 생깁니다.
언재부터인가 아이들이 벌써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아찔하게 표현한 영화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면서 영화 보는 내내 핑크빛 얼굴로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육사오'를 보면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코미디 영화이다 보니 다양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중에서 '고경표'배우의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연기에 아이들은 너무 재밌다고 했었고요. '육사오'영화의 재미를 나누면서 또 다른 영화를 고르다가 우연히 한 시리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영화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분노의 질주' ' 트와일라잇'시리즈처럼 다음 시리즈를 엄청 기다리곤 했습니다.
바로 '응답하라 1988'입니다.
사실 그 시리즈가 인기절정일 때 집에 TV도 없었고 아이들이 모두 젖먹이라서 시리즈물을 볼 엄두도 못 냈었습니다. 방송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리즈를 이제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아이들은 정말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볼 때만큼 즐거워하면서 봤습니다.
1편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한편 두 편 이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점점 더 심취해서 덕선과 동네 남자친구들의 골목 우정, 덕선과 보라 자매 간의 치열한 신경전, 정환이의 사랑이 제때 표현되지 못해서 결국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시리즈 내에서 다양한 캐릭터 인물들 간의 반짝거리는 에피소드들, 소소한 사랑이야기들에 대해 아이들은 너무 재밌어했습니다. 시리즈물 거의 마지막에 선우(고경표)와 성보라(류혜영)의 골목길 뽀뽀신을 볼 때마다 극도의 움찔거림과 어쩔 줄 몰라하는 막내딸(초3)을 볼 때마다 보는 제 마음이 오글거렸습니다.
총 20회의 시리즈를 보면서 아이들이 한 말에 감동받기도 하고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수시로 물었습니다. 정말!! 엄마 아빠 저렇게 컸다고요? 아이들이 아빠, 엄마가 지나온 과거의 추억을 진짜로 궁금해하며 물어봐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각 장면마다 이해가 안 되는 예전 문화나 분위기,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주다 보니 MBC 청룡, 연탄갈기, 박남정 댄스, 카세트테이프 녹음 선물, 갤러그, 보글보글, 천리안 통신 동호회, 머리 무스, 밀가루 소시지 반찬, 경양식집 외식 등등 수도 없는 추억을 늘 부연설명해줘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해를 못 했고요. 이해가 되도록 늘 설명하면서 봤습니다.
부모가 자기 경험에 대해 '라테는 말이야!'라고 뜬금없이 말하기보다는 같이 보는 미디어 덕분에 아이들이 수시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물었고요. 그런 궁금증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설명하다 보니 '라테~'를 말해줄 수 있어서 최고였습니다. 제 마음은 시리즈를 보는 내내 뿌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한 말에 마음속으로 뻥 터졌습니다.
아이들 한마디- 나 F인가 봐.
그런 설명을 해주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함께 보다 보니 제가 아이들 나이일 때 부모님께 했던 상처가 되었을 말과 행동 때문에 수시로 아이들 뒤에서 울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빠! 울어요?"라고 묻더니, "나도 우는데... 나도 아빠처럼 F인가 봐"라면서 뿌듯해하는 것이 재밌었고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은 '공감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을 극혐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공감부족'의 문제점을 고치려고 하다 보니 '공감 대화'를 하기 시작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공감'을 하고, '공감'을 이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말에 덩달아 느낀 것은 - 아이들이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기특했습니다.
제가 아이들 나이일 때는 절대로 생각해보지 못한 '공감'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너무 소중합니다. 아빠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기특했고 정말 흐뭇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크고 있으니까 저처럼 '공감부족'으로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출처: 이투데이 15.11.18기사에서 발췌.인용함.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과거를 소환하고 사랑, 성취, 의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 엄마들끼리의 스트레스 해소와 끈끈한 동지애도 들여다보는 좋은 점도 많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정환이를 포함한 일당들이 늘 택이 집에 모여서 작당도 하고 서로 챙겨주거나 함께 노는 것을 보면서 저와 큰아들은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런 행동하면서 친구집 여기저기 전전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대학교 자취하면서 자취방에서 모여서 놀았던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큰아들도 이사오기 전까지는 동네 친구들과 그렇게 지내면서 하루하루 노는 맛에 즐기고 다녔던 생각을 하면서 우리 둘은 몸과 마음이 들썩들썩했습니다.
결국!! 큰아들은 주말을 이용해서 이사오기 전 동네로 놀러 갔습니다. 그때 친구들과 신나게 반나절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 오더니 이제야 뭔가 노는 것 같다고 행복해했습니다. 아이에게 그렇게 놀고 어울릴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이사 와서 지내는 동네가 아직도 어색하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을 가는 통에 학원 안 가는 큰아들은 친구를 만들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 고통이 말끔하게 날아간 시간 같았습니다. '응답하라 1988'덕분에 좋은 기회도 만들었고요.
아이들과 영화를 보던지 시리즈물을 보던지 뜬금없이 내뱉는 말속에 항상 아이들 마음과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 말 한마디가 귀에 맴돌면 탕후루처럼 아이들 생각이 줄줄 달려 나오는 것 같아서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이 진짜 즐겁습니다. 뭔가 알아내겠다고 앞에 불러놓고 대화를 한다면 서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제게는 이런 시간이 정말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을 적을 때마다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아직까지는 세상에 대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고 자기를 힘들게 하는 친구들이 있을지라도 좋은 마음으로 해결해 보려는 삼 남매가 기특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공감'을 잘하는 F성향의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저도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더 많이 '공감'하고 필요한 '대화'를 잘하는 아빠, 남편이 되고자 또 다짐했습니다.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덧붙이는 말: 천만명이 기다리는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근황을 통해 하나씩 배워가는 저의 모습을 공개하는 목요일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늦게 발행함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원래 공개하려고 했던 영화보다 '응답하라 1988'을 함께 보면서 가슴 뭉클했고 행복했고 즐거웠던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다시 쓰다 보니 늦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덕선(이혜리)가 출연한 '빅토리'영화를 보려다가 실패했습니다. 중1 큰아들에게 요즘 최고 인기작이라면서 '캐치티니핑'을 보자고 한 셈입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고 발그스래해졌던 큰아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몇분이 추천해주신 영화가 있어서 같이 볼까?라며 고민중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