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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적현실주의 Mar 15. 2022

우린 망해서 온 게 아니야

"우린 망해서 온 게 아니야"


이사 오기 전부터 딸에게 이사 갈 집이 너무 기대가 된다고, 설렌다고, 아빠는 2년 전부터 이곳에 올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세뇌 덕분인지 효심 때문인지 잘 지내던 딸이 이사 셋째 날에 괜한 투정을 부렸다.


"예전 집이 그리워?"


"(울먹이며) 끄덕끄덕.."


아빠도 그리워.. 아빠의 첫 집이었고 그곳에서 너희들이 모두 태어나고 건물은 그곳이 더 좋으니까..


생각해보니 신축에서 태어나 5년간 신축만 살던 딸이 30년이 다 된 집에서 생전 처음 보는 라디에이터를 보니 적응이 안 되는 것도 당연했다.



설상가상 첫날은 보일러도 되지 않아 냉골에서 잠을 자고.. 울먹이는 딸에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빠가 8살 때 우리 집이 많이 어려워졌어.. 그래서 서울에서 이사를 와서 친척집에 얹혀살았는데 집에 화장실도 없고 천장에는 고양이도 울고 벌레가 너무 많았어..


밤에는 화장실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고모랑 같이 가고 그랬어.. 그래서.. 아빠는 너무 슬펐고 너희들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딸아..


우리는 망해서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이 집이 더 비싼 집이야.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격은 가치를 나타내. 이 집이 낡았지만 더 비싸다는 건  건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좋다는 뜻이야.


아빠는 건물이 아닌 더 나은 환경을 너희들에게 주고 싶었어."


설득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무릎에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나의 선택이었는데.. 나 빼고 모두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정수기 코디님이 방문하여 손가락 풍선을 불어주신 이후 모두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사 후 며칠이 지나 맞이했던 생일..


강남구민으로서의 첫 생일에 너무도 많은 축하와 선물을 받았는데 가장 큰 선물은 이제는 모두가 이 집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투자와 결단은 언제나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인데.. 옳다고 믿었다면 끝까지 믿는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이곳에 오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해준다면, 아니 이곳에서의 추억이 아름답게 남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딸에게 받은 생일선물. 진짜 5만원보다 더 큰 행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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