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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Jul 24. 2023

걷고, 걷고, 한산도 이야기

5월 초반 여행의 기록(6)

 통영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그 날의 목적지는 한산도 제승당이었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둘러본 뒤, 오후에는 통영 시가지를 보는 것으로 일정을 세웠다.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항구에 가서 제승당 행 유람선 표를 구매한 뒤 아침을 먹기 위해 항구 뒤 수산물 시장에 갔다.

    

 아침 메뉴는 이 지역에서 많이 파는 시락국이었다. 시락국은 서울말로 하면 시래기국인데 이 곳에서는 시락국을 아침밥으로 많이 먹는 듯 했다. 시장 내에는 수 많은 시락국집이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시락국집들 중 허영만이 다녀갔다는 <훈이시락국>으로 향했다.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포의 느낌이었다. 들어가면 깔린 회색 빛 시멘트 바닥에다가 벽에 어찌어찌 붙어있는 메뉴판,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ㄱ’자 모양으로 가운데에 반찬 통이 있고 그 주위에 다찌처럼 둘러앉아 밥을 먹는 구조였다. 마치 이른 아침의 이자카야 같았다. 시락국을 시키고, 입에 맞을 것 같은 반찬을 조금씩 퍼서 밥을 먹었다. 아침이라 속에서 잘 받지는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먹었지만 한 그릇을 다 비우지는 못했다.     


 아침을 먹고 가게를 나와, 아직 배 시간까지 여유가 남았기에 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은 대부분이 생선을 파는 가게였고 8시 정도의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장을 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돌아다니고, 좌판을 구경하다가 떡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도 8시 즈음이라 제법 따뜻한 떡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점심 대체안 혹은 간식의 개념으로 인절미와 통영 전통 떡을 샀다. 처음에는 인절미를 담았고, 뭔가 더 있을까 보다 구석에 있던 떡을 보았다. 반월형석도의 모양인데, 겉에는 콩가루가 묻어있고 속은 또 까맣던 그 떡을. 사장님께 저건 무슨 떡인지 물어보니, 통영 전통 떡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여행지의 전통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인절미에 그 떡 2개를 추가해 비닐봉투를 들고다녔다.

    

 한산도 행 선박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지 않았다. 차량 선적도 거의 없었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한 10-12명 정도? 선실 내에 있어도 되지만, 항해 시간도 짧고 바다의 향을 느끼고 싶어서 그냥 야외 선실에 나와있었다. 난간에 기대서 바람을 쐬고, 작아져가는 항구를 바라보고, 지나가는 어선들을 바라보고, 어선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인사를 건네고, 나의 방식대로 바다를 느끼다보니 어느덧 제승당이었다.   

   

 항구에 내리면 두 갈래로 사람들이 나누어진다. 정차되어있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과 바로 제승당으로 가는 사람들. 전자는 대부분 한산도 주민들이고, 후자는 관광을 온 관광객들이다. 나도 후자에 발맞춰 소나무 길을 걸었다. 섬의 테두리를 따라 걸으면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그렇게 한 5분인가 걸어가면 제승당이다. 제승당에서 유명한 글귀인 “한산도 달 밝은 밤에”를 따라 수루에도 올라보고 충무공에게 제향한 뒤 제승당을 나섰다.      


 제승당을 나서보니, 뭔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밥먹고 이렇게 왔는데 섬에서 벌써 나가는건 너무 시간낭비 같았다. 그리고 지금 출도한다고 해서, 그 뒤에 크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관광지들이 다 붙어있어서 그저 전체적인 일정의 진행순서를 앞당기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항구까지 도착해놓고 한 선택을 한다. 즉석 한산도 트레킹을 하자는 결심을.     

한산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 버스가 다니지 않으면 조용하다.

 이번에는 아까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버스가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버스를 탔지만 나는 걷는다는게 그들과의 제일 큰 차이였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다향기보다는 산의 냄새가 났다. 쭉 뻗다가 오르내리다가 구부러져있는 아스팔트를 따라 걸었다. 차들도 많이 없어서 노래를 부르며 걸었고, 걷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생각없이 걷다가, 생각이 없으면 안될 것 같아 깊은 곳에 있던 답답하고 막막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이상적이라고 보이는 혼자 여행을 하다가 중간 즈음에 회차점을 정해야할 것 같았다. 약간 힘들기도 했고, 애매하게 돌리자니 계속 걷다보면 무언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지도를 켜고 쭉 읽다가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하나 나오길래, 거기까지 가서 아까 그 버스를 타고 항구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걷고, 걷다가 마을이 보였다. 조용한 시골마을. 앞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차들만 몇 대 세워져있을 뿐이었다. 집들 앞 쪽으로는 작은 밭이 있고, 밭 앞에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며 뻘을 만들어놨다. 정류장과, 그 옆으로 설치해놓은 바람개비들이 눈에 보였다. 그 곳의 이름은 대고포마을이었다. 정류장에 고개를 들이밀고 시간표를 확인해봤는데, 시간표에 ‘대고포’라는 정류장이 없었다. ‘소고포’는 있기는 했으나, 그 횟수가 하루에 2대 정도였다.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며, 조금 더 걸어가서 소고포마을까지 가보기로 결심했다. 소고포마을로 가는 도중에 두 갈래 길이 나와, 결정을 해야했다. 직진하면 소고포마을이었고, 좌회전하면 여차마을이라는 곳이 나왔다. 여차마을은 소고포보다는 버스가 많이 오는 동네였다. 거리는 둘 다 거기서 거기, 여차가 조금 더 멀기는 했다. 나는 좌회전 해 여차까지 가보기로 결심했다.   

   

 여차마을로 가는 길은 이제까지의 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좀 더 업-다운이 심했다. 계속 비슷한 풍경을 보며 아스팔트를 걸었다. 해는 뜨거웠고, 기운도 점점 빠지고 있었다. 커다란 언덕이 하나 나와,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하며 가고 있는데, 언덕의 정점에서 아래를 보았다. 누가봐도 마을인 곳이 있었고, 지도상으로도 여차마을이 맞았다. 이때 나는 스스로가 포켓몬 트레이너가 된 기분이었다. 과거의 <포켓몬스터>게임에서 보면 트레이너는 집을 나와 계속해서 걸어다닌다. 산을 지나기도하고, 기약없는 풀 숲을 지도 하나에 의존해 걷는다. 그러다가 도시를 발견하면 필요한 것을 사고, 치료도 한다. 그 모습이 그때의 나와 퍽 닮았다. 올라온 만큼의 언덕을 내려가 마을에 닿았다.      

겨우 발견한 여차마을.

 마을은 아까의 대고포와 다르게 완전한 어촌마을이었다. 바다와 바로 마주보고있고, 포구에는 어선들이 정박했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마을의 중심에는 커다란 교회와 마을회관이 하나씩 있었다. 그리고 마을회관 앞에, 내가 그렇게 기대하던 버스정류장이 2개 있었다. 맥락상으로 봤을 때, 항구로 가는 방향은 내가 걸어온 길의 역방향이었다. 그래서 그쪽 자리에 걸터앉아 기다리는데, 버스가 반대편으로 들어왔다. 헐레벌떡 뛰어가 운전석 창문으로 기사님께 질문했다. “기사님 항구갈려면 어디서 타야합니까?”, “이걸 타면 된다.” 그 말을 듣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내 생각과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버스가 가는 방향을 보면서, 내 지리학적 지식의 오만함을 탓했다. 버스를 아까 거기에서 탔더라면 항구를 못갈 뻔 했던게 아니었을까.    역시 현지인에게 물어보는게 제일 정확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창 밖을 구경했다. 힘이 덜 드니 상대적으로 풍경이 많이 들어왔다. 굴 껍데기에서 칠기를 만들기 위해 은색부분을 벗겨내는 할머니들과, 어선에서 출항하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눈에 다 들어왔다. 그렇게 넋을 놓고 버스에 있다보니 익숙한 풍경이 다시 비췄다. 여차마을, 아까 내가 서 있던 정류장이다. 버스는 회차점을 돌아 다시 항구로 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 말인 즉슨 앞서서 오만하다고 생각했던 내 지리학적 관점이 오만하지는 않았고, 아주 적합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뿌듯함을 가지고 항구에 내렸다. 항구에서 한 20분 정도 파도를 구경하고, 내리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통영항으로 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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