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나는 지드래곤과 이정재의 초등학교 동문이다. 남산에 위치한 꽤 유명한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과는 일면식도 없다. 지드래곤이 1988년생이니, 아마 1~2년은 같은 공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학교는 미션스쿨이다. 미션스쿨이란 기독교인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를 뜻한다. 학교 복도를 걸으며 벽에 걸린 외국인의 초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독특했다. 마포삼열.
"마포라는 성이 있나? 외국인인데 한국 이름을 이렇게 지었나 보네."
신기하지만 무심코 넘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채플이 열렸고, 목사님이 설교를 전하셨다. 하지만 그 외에는 기독교 교육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성경을 따로 배우거나 채플 이외의 시간에 기도를 하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기독교 동아리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를 1년 다닌 뒤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자연스럽게 다녔지만, 믿음은 뜨뜻미지근했다. 중고등학교 수련회에서 눈을 질끈 감고 통성기도를 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손을 얹고 기도해 주는 순간이 되면, 나는 그저 어색함에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인 CCC(Campus Crusade for Christ)에서 약 2년간 활동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나에게는 학교에서 어울릴 기회를 제공해 준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결이 맞지 않았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사영리*를 전하는 것은 내게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 믿음은 그 정도로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믿음이 진정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역 한인교회 작은 청년부에서였다. 2000년대 초, 찬양 예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도 이 시점이었다. 경배와 찬양 사역을 담당하셨던 전도사님께서 예배의 의미에 대해 세미나를 열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축복송과 함께하는 기도 시간에, 내 마음속 깊은 죄악을 마주하며 흔히 말하는 눈물 콧물 흘리며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계심에 확신을 느꼈고, 지금도 나의 회심의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이날인 듯하다.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날 밤, 전도사님이 집으로 돌아가시다가 원인 모를 이유로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회복하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단순한 예배 세미나 시간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교회 활동에 점점 몰두했지만, 대학 공부는 내 신앙에 계속 도전을 걸어왔다. 나는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을 부전공했다. 진화론은 생명과학의 기본이며, 1학년 생물학 시간은 진화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학 강의에서는 하나님 없이도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는 이 모든 것이 진리라면, 내가 믿는 신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정말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걸까?”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였기에 나는 신앙과 학문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고, 9.11 테러 이후 종교에 대한 비판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나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적 반론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책이 C.S. 루이스의 책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동네 서점의 종교 섹션을 둘러보다,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인용문들이 들어 있는 작은 책 시리즈를 발견했다. 인용문 하나하나가 내 깊은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용문들의 원책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였다. 이후 루이스의 글은 내 믿음을 견고히 해 주었고, 도킨스의 논리적 허점을 깨닫게 했다. 루이스 이후에는 과학과 신학을 넘나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알게 되어 신앙과 과학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 주었고, 지적설계를 이야기하는 마이클 비히나,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하는 프랜시스 콜린스의 바이오로고스 (Biologos)의 글들을 탐독하며 기독교와 과학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진로를 고민했다. 그때, 한국에서 대학생 원어민 교사 파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1년간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를 얻었다. 그 경험 속에서 나의 기질과 성격이 교육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고, 학부를 졸업한 뒤 교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사영리: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 예수님의 희생, 그리고 개인적인 응답이라는 네 가지 간단한 원리를 통해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며 작은 팸플릿에 간단한 그림과 함께 전도용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