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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an 02. 2023

사랑, 그 비효율적인 행위에 대하여

상실 그 이후의 삶

저녁엔 마른 휴지처럼 날아다니다가도 아침이 되면 물에 적신 듯 무거워지는 몸을 일으켜 세운다. 침대가 욕조도 아닌데, 나는 왜 아침마다 이렇게 몸이 천 근 만 근 인 걸까. 좀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갑상선이 다시 날 치고 올라오는 건 아닌가...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오늘은 병원을 순회해야 하는 날. 하필 이사를 와버려서 다니던 병원과 차로 한 시간 거리가 생겨버렸다.

나는 암환자도 아니고, 그저 갑상선이 제기능을 하고 있는지 추적만 하면 될 정도의 작은 지병을 가진 것뿐인데, 남편은 그런 나를 병원으로 나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안전을 취해야만 하는 사람인 듯 대하며.


그리고 다시 동네의 정형외과를 향해 악셀을 밟는다.

유산 이후 손목, 목, 무릎, 허리 등. 안 그래도 저질이었던 몸의 구석구석이 삐걱이며 읍소를 한다.

엑스레이실에서 온갖 자세를 취하며 뼈사진을 찍는다. 목에는 스테로이드를, 손목에는 물리치료와 보호대를 하는 동안 남편은 대기실에 머물러 있다.


누워서 치료를 받으며 결혼 이후 내가 배워온 사랑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본다.

남편은 왜, 오늘 하루종일 내 곁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으로 있는 것일까.

지금 시간 오후 네 시 십구 분... 이 시간 동안 남편은 내가 없었다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예전부터 느꼈었던 것이지만, 오늘은 왜인지 더 선명하고 진득하게 이런 류의 물음들에 대답을 내놓고 싶었다. 아마 스테로이드의 효과였을까, 물리치료의 광선 때문이었을까.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이었을까. 고맙게도 그에 대한 대답이 잔잔히 떠올랐다.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비효율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



임신을 준비하며 갑상선 저하증의 문제가 찾아왔을 때, 그 외 여러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을 내려놓아야 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내가 미래의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 생각했었다. 효율이 무엇이란 말인가. 최단 시간의 노력으로 최상의 성과를 이뤄내는 것, 한 번의 움직임으로 최다 아웃풋을 이끌어 내는 것,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들을 성취해 내는 것. 그것이 내게는 효율이었다.


퇴사 후 거짓말처럼 찾아온 작은 심장을 보며, 역시나 나는 사랑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듯하다. 하나의 선택으로 더 값지고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으니까. 하지만 효율이 지속되려면 그만큼의 결과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말이 무색하리만큼 그 아이는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그런데 나는 그 작은 별이 5주간 반짝이다 떠나간 이후에도 내가 이 생명을 위해 내린 모든 선택들이 후회되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 더한 시간도, 공간도, 체력도, 감정도, 다 내어줄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가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는 효율 그따위 것 개나 줘버리라는 마음뿐이다.


진정 사랑이란 감정이 깃든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효율을 사랑한 것이 아닌, 나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

그 지독한 자기 사랑으로 나는 나의 시간, 물질, 공간을 지키기 위해 침범해 들어오는 모든 일과 관계를 '비효율'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내치며 살아온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의 영역을 지켜내는 나를 '효율적인 사람'이라고 칭하며 거만을 떨고 있던 것 아니었을까.


아낌없이 내게 자신을 내어주는 남편이, 삶에서 가장 벅찬 환희를 안겨준 5주간의 생명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이제 나는 효율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과 관계에 '효율'이란 잣대를 들이미는 나를 경계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 되겠노라고.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의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감히 다짐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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