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일주일, 퇴사를 선고하다

등장인물 소개

by 새벽나무

첫 출근은 어느 곳에서든 각자 나름의 인상을 남기기 나름이다. 낯선 자리에 앉아 낯선 자료를 읽다가 낯선 사람들과 밥을 먹고 나면 자신이 이 회사 대표라며 다가오는 낯선 사람과의 낯선 악수, 낯선 면담이 이어진다. 하루가 시작함과 동시에 끝이 난다. 그날 밤, 누군가는 여전히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고 누군가는 입사 취소를 청하는 문자의 전송 버튼을 누른다.


나의 다섯번 째 직장이자 100일 후 퇴사를 앞둔 이곳은 그런 의미에선 꽤 특별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첫 출근날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출근 전 두 번의 면접은 2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작은 거짓말을 하게 될 거에요.

1차 면접 장소라고 보내준 문자의 링크를 눌렀다. 방금 막 서류 합격 안내 전화를 끊은 뒤였다. 지도앱은 강남의 한 카페를 표시하고 있었다. 찾아 보니 회사 바로 옆 건물이었다. 회사 밖에서 진행하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카페에 앉아 문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 혼자였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아이패드를 들고 온 그는 가벼운 인삿말 뒤에 메모장을 켜고 이건 알아요? 이거는? 이건 관심이 있나요? 하며 공고에 올린 직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것들을 물었다. 나는 아뇨. 모릅니다. 아뇨, 잘 몰라요. 할 수밖에 없었다.


망했다고 생각하고 편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이유, 현재 팀 구성과 팀원들의 캐릭터, 회사 내 정치 상황, 자신의 입지 등등. 심지어 본인의 와이프가 어쩌고하는 개인 이야기도 조금.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된 나를 앞에 두고 덜컥 거짓말을 해야한다고 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뜬금없는 말에 나는 내가 놓치고 만 맥락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겨우 퍼즐을 조립해보니 거짓말의 타당한 사유는 이랬다. 작년에서야 새로 생긴 팀인데 팀장과 나이 많은 팀원 두 명 모두 대표에게 찍힌 상황이고, 자신만이 팀에서 유일하게 1인분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입사하게 되면 다들 막내인 나를 부려 먹으려고 안달이 날텐데 자신과 원래 알던 사이라고 해야 그들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것들을 본인이 알려줄 수 있다, 본인과 함께 일해야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저 수상해보이는 꿍꿍이에 속았냐고?

그렇다. 이 글도 그렇기 때문에 탄생한 거다.



사수와의 첫 만남 ㅡ 악연의 시작


그게 바로 나를 6개월 간 지옥으로 몰고 갈 사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지금 돌아갈 수 있다면 저 장면에 ‘그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를.’ 같은 내레이션을 넣을 수 있을텐데.


1차 면접은 그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끝났다. 나는 그가 내준 테스트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왠지 모를 찝찝함과 수상함은 일단 합격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테스트 기한은 일주일이었지만 나는 바로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찾아도 안나올 거라더니 진짜였다. 낙담하고 있던 차에 문자가 왔다. 대충 내가 마음에 드니 테스트는 부담갖지 말고 하라는 얘기였다. 문자 자체에서 젠틀함이 흘러 넘쳤다.


그렇다. 그는 굉장히 젠틀했고, 유머러스했고, 자신의 강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줄 알았다. 고작 사소한 거짓말 하나에 수상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 그게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는 걸.


여차저차 테스트는 통과했다. 2차 면접을 보러 다시ㅡ이번엔 진짜ㅡ회사로 가야 했다. 물론 그전에 카페에서 그를 먼저 만나야 했다. 그는 다짜고짜 아이패드로 본인의 이력서를 띄워 건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와 아이패드를 번갈아 보았다. 아마 자신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임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에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은 뒤 함께 사무실로 이동했다. 팀장 그리고 팀원 한 명과 2:1 면접을 보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사수가 강조하며 묘사했던 캐릭터 설명이 떠올랐다. 평범한 면접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대답하며 자꾸만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독이 되어 버린 가산점


합격 연락은 김이 샐 정도로 빨리 왔다. 하긴 어떻게든 나를 본인의 지인으로 이곳에 합격시켜 무언가 이루어내고 말겠다는 그의 열망은 그만큼 확고해 보였다. 오히려 나보다 더 간절해 보일 정도였다.


앞서 말했듯 첫 출근날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둘째날, 퇴근 10분 전 대표 그리고 경영진과의 회식이 잡혔다. 처음 만나는 나의 입사 동기들과 함께였다. 근처 족발집에서의 어색한 1차가 끝나고 펍에서 2차가 이어졌다. 다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대표는 험상 궂게 생겨서 말도 생긴 대로 했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그냥 거칠고 순박한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었다. 딱히 악의나 꿍꿍이는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잘 알았다. 나도 함께 말을 툭툭 받아, 쳤다. 그리고 대표는 그걸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졸지에 나는 출근 둘째 날 환영회 자리에서 대표 눈에 띄고 말았다. 그 이후 언젠가 그는 그 사실을 우리 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되짚었다. 사수를 포함한 모든 팀원이, 나보다 최소 여섯살, 최대 스무살 많은 아저씨 네 명이 대견해하는 척 질투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고, 그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였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나와 드러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드러낸 그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다.



가장 이성적일 수 있는 시간


그로부터 일주일 후 공식적인 팀의 첫 회식이 있었다. 명목상 일주일째 무사히 출근한 나의 환영회였다. 사수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참치집을 예약했다. 기왕 하는 회식 맛있는 음식에 술을 곁들인다면 나쁠 것 없었다. 우리는 다같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그때는 일종의 섬세함이나 배려라고도 생각했던 그 행동이 회삿돈이라면 무조건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일 줄은 몰랐다.


나는 맥주를 선택해 마셨다. 참치에 맥주라니 다소 언밸런스한 조합이지만 첫 회식에ㅡ심지어 즐겁지도 않은 자리에서 술에 흥청망청될 불상사는 만들면 안되니까. 다행히 그럴 일은 없었다. 회식 자리는 단순히 재미없음을 넘어서 입맛까지 뚝 떨어뜨렸다. 심지어 사수는 막차를 타야한다며 홀로 일찌감치 자리를 뜬 상태였다. 나는 팀장ㅡ앞으로 그는 물개라고 칭하겠다ㅡ과 팀원 둘ㅡK와 올빼미ㅡ과 남아 김빠진 맥주와 서서히 녹아가는 참치를 꾸역꾸역 씹어 삼켜야 했다.


나보다 스무살 많은 물개 팀장, 열 살 많은 K와 올빼미는 유독 공통 관심사를 찾기 어려워했다. 직장에서 만난 사이끼리 그게 뭐 쉽겠냐마는 이미 중년을 넘긴 그들의 나이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 그냥 일 얘기나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미 말했듯 이들은 ‘일을 못해서’ 회사에서 찍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자리를 버티고 있는 나에게 간간히 눈빛을 던졌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웃거나 때로는 따라 웃기도 포기했다. 술병이 늘어갈수록 그들은 점차 속마음을 열어 보이기 시작했다. K와 올빼미는 팀의 처지에 대해 물개의 탓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K는 꽤 격하게 물개를 공격했다. 나중엔 손가락도 공중에서 자유롭게 묘기를 부렸다.


열한시쯤에야 겨우 자리가 파했다. K와 올빼미는 2차를 갈 기세로 어깨동무를 했고, 나는 빠르게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인사를 마치고 후다닥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물개가 본인도 같은 방향이라며 쫓아왔다. 개찰구까지 그와 함께 걸어갔다. 그는 내게 K와 올빼미 흉을 보았다.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고 말하는 그의 숨결이 불쾌했다.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사수를 불러내어 얘기했다. 다섯번 째 회사였고,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모르면 몰랐지 아는데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이땐 사수의 정체를 몰랐으니 그렇다 쳐도 물개와 K, 올빼미 모두가 문제였다. 물개 팀장은 대표와 팀원들에 대한 불만과 옹졸한 자존심 속에서 수동 공격성을 띄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능력이 없어서 대표님한테 찍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K는 그런 팀장에 대한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었으나, 속으로는 항상 누군가를 시기했다. 올빼미는 태만이라는 단어가 인간이 된 형상이었다. 느긋하고 차분하나 남에겐 엄격했고 본인에겐 관대한 사람이었다.


나의 머릿속은 탈출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일주일이면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동시에 회사에 안주할 필요도 없는 때였다.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조직이나 무리에 동화되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때.


그 이성적인 나는 사수의 감언이설에 다시금 놀아났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팀 분위기와 팀원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에도 쓰였지만, 사수와 함께 일하며 그가 지적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데에도 쓰였다. 그는 확실히 스스로가 자신하는 만큼 일을 잘했고, 가르치는 데에도 소질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 작업물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표현 방식이 좋았다.


역시 이 때는 몰랐다. 그 칼날의 끝이 나로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앞으로 본인하고만 일을 하게 될 터이니 팀원들 걱정은 말라고 했다. 직접 물개 팀장과 K와 올빼미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 채로 확신에 차서 얘기했다. 자신에겐 물론 그만한 권한이 있다는 것처럼.



다섯번 째 회사였고, 내 나이 서른둘이었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사람을 너무 몰랐고, 사기 당해본 적도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보다 순진하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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