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일기 4
병의 진행이 빠르지 않다.
종양 크기가 크지 않다.
위치가 위험하진 않다.
병원에서 들었던 그 어떤 설명도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대학병원 교수님께는 '되도록 빨리 수술 해달라'고 말하는 아빠에게서 전에 없던 '유난스러움'을 느꼈다. 밖에서 사회생활할 때는 유머스럽고 리더십있는 대빵일지 몰라도 집에서는 그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아빠다. 그런 아빠가 요즘 새벽기도 가서 운다는 엄마의 제보를 듣고 그저 당황스러웠다. 당사자인 나도 아무렇지 않은데 남사스럽게 왜 그럴까, 라고만 생각했다.
병을 진단받고 수술하기까지 약 한 달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난 갑상선암에 대해 단 한 번도 인터넷을 뒤져보지 않았다. 지금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내 병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다만 짐작해보건데 회사 상사 분에게 얘기했을 때, 최측근에게 살짝 기도를 부탁했을 때 그들의 반응이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강해서 나까지 심각해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특히 내가 찾아보지 않아도 사람들이 보내주는 <착한 암 '갑상선암' 완치율 98%>, <거북이 암 '갑상선암' 과잉진료 논란> 등의 기사를 보며 더욱 이 상황을 쉽게 넘기려 했다. 기사의 요지는, 적은 돈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의 환경 때문에 착하고 느릿느릿한, 당장 발견하지 않아도 되는 병을 진단 받아 굳이 수술까지 하는 상황을 꼬집는 것이었다. 암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과잉진료의 산물이라니. 현명하고 성숙한 환자가 되고 싶었고 청승 컨셉의 새드엔딩을 펼치며 호들갑 떠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빠는 갑상선암에 관한 모든 기사와 블로그를, 특히 부정적인 과정과 결말이 담긴 내용만 골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나에게 긍정적인 사례들도 수집은 했으나 위험을 대비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을 수 있다. 철저하고 계획적인 성격이라 모든 일에 플랜B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는 나에게 찾아온 이 문제에서 혹시 모를 변수들을 체크했고 나의 생존률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임파선을 타고 딸의 몸 구석구석을 침투하는 암세포의 횡포를 머릿속에서 도무지 끊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기 전까지 '임파선 전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당사자와는 차원이 다른 소설을 써 내려 갔다.
병을 진단해 준 내과에서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아빠 손에 이끌려 병원에 왔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그득그득했는데, 이번에도 난 그곳에서 제일 어렸다. 갑상선은 나이 든 사람들만 아픈 곳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던 중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난 병원에 가면 늘 소심해진다. 엄마나 아빠가 동행해주면 의사가 나에게 직접 질문하지 않는 한 입을 떼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진료를 받기 전 부모님께 나의 모든 증상을 낱낱이 설명해 둔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히 증상을 설명할 것 없이 병이 명확히 표시된 종이와 CD를 가지고 갔기에 교수님이 자료를 확인하실 때까지 멍하니 기다렸다. 그리고 교수님과 아빠의 대화가 이어졌다.
"암 크기가 크진 않아요. 위험한 상태는 아닌데 암이라고 밝혀진 이상 언젠가는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네. 언제 수술이 가능합니까?"
"빨리 수술 받길 원하시면 설 전 주쯤 가능합니다."
"네네. 그렇게 하죠."
딱히 감정이 오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빠의 조급함을.
그리고 수술 방식에 대한 설명이 오갔다. 기존 수술은 목에 5~6cm 정도 절개하지만 최근 개발된 로봇수술은 겨드랑이 쪽으로 장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흉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수술비 얘기에서 나의 예민함이 올라왔다.
"환자 분이 아직 결혼도 안 하셨고 여성분이시다 보니 흉터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봇수술은 목을 절개하는 기존 수술 비용의 5배 정도입니다"
"네, 로봇수술로 하죠."
음? 이게 무슨 소릴까. 아빠는 '비용이 기존 수술의 5배'라는 얘기를 못 들은건가, 아니면 이해를 하지 못한 걸까. 조바심에 성급한 결정을 내린 아빠를 이해할 수 없어 두 분의 대화를 잠시 끊었다.
"나 그냥 목에다 수술할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무슨 목으로 수술을 해?"
"아니, 굳이 그 돈 들여서 겨드랑이로 수술할 필요가 있어? 치료 효과는 똑같잖아. 장비 좋다고 다 좋은 수술 아닌데."
조용히 아빠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교수님이 한 말씀 거들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여잔데... 흉터가 생각보다 커요.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이 되긴 하지만 티가 안 날 수는 없고요."
"저는 괜찮은데요?"
잠깐의 정적. 교수님도, 간호사님도, 내 옆의 아빠도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새로 들어 온 장비가 무조건 좋을 것이란 믿음'을 버린 지는 오래다. 최근에 개발된 로봇에다가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병원이든 아빠든 날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란 단호한 눈빛을 장착한 채 겨드랑이보단 목을 째는 게 여러모로 더 낫다고 말했다.
그때 아빠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왜? 돈 때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머뭇거림이 충분한 대답이었으리라.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돈이었다. 기존 수술과 로봇수술의 비용이 같았다면 당연히 로봇수술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5배 차이는 너무 무거웠고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 온 돈을 그렇게 가볍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심미적인 이유로 그 정도의 돈을 뿌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난 치료 목적으로 받는,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한 수술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이유로 딸 목에 칼집을 낼 수 없었던 아빠는, 수술비를 온전히 부모님께 기댈 수 밖에 없었던 딸은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1월의 어느 날로 '로봇'수술 날짜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