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암이래

갑상선암 일기 3

by 새벽숨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의사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2주 전 찍었던 초음파 사진에서 확인된 종양의 모양을 보니 물처럼 퍼지지 않고 동그란 모양인 것으로 보아 이것은 악성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검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악성이라고 판단되며 수술이 필요하다. 조직검사의 신뢰도는 95%정도이며 이 말은 5%는 악성이 아닐 수도 있다. 악성인지 아닌지는 수술 후 떼어낸 조직을 분석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젊은 여성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것이고 수술해서 종양을 떼어내면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병의 진행은 느리니 당장 수술하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우리 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기 때문에 대학병원이나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예약을 잡으시는 것이 좋겠다.



멍하니,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당신은 갑상선암입니다."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갖 수식어를 붙여가며 설명해 시다니. 친절(?)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걸까, 입 아프시니 간결하게 말해도 된다고 해야 하는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의사 소견을 다 듣고 난 뒤의 내 반응은 '연차가 몇 개더라'였다. 연초부터 연차를 다 소진하기 아깝기도 했고 주어진 연차보다 더 많은 날을 쉬어야 한다면 그땐 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내가 절대 낙천적인 사람이 아닌데 암과 저울질해대고 있었던 것이 생명이 아니라 연차였던 것은 이 병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얘기한 의료진, 갑상선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쏟아진 복잡한 의사의 설명,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진료가 끝났고 간호사 분이 대기실에 잠시 앉아있으라기에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새벽이 검사 마쳤나."

"어, 엄마. 근데 나 수술해야 한대."

"어? 무슨 수술?"

"갑상선암이라는데. 아, 엄마, 다시 전화할게."




간호사 분이 와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면서도 "갑상선암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위험한 병은 아니에요."라고 하셨다. 난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내 머릿속은 수술을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명을 다 듣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아빠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새벽아,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내 주변에도 갑상선암 많고
다 수술 받아서 지금은 건강하다.
걱정하지 마라.


아빠가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일테다. 아빠는 직업상 의료 쪽에 빠삭한 사람이니까. 런가보다하며 '옹.'이라고 답장을 보낸 뒤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챙겨 약국에 갔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있으면 신지로이드라는 약을 먹어야 한다. 갑상선 호르몬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라서 약으로 부족한 호르몬을 채워야 한다. 꾸준한 경과 관찰을 통해 약의 용량을 잘 맞춰야 하며 넘치게도, 모자라게도 처방 받으면 안 된다. 평생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병이 경미한 경우 약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누가 평생 호르몬 약을 먹길 바라겠냐마는 나는 누구보다 이 약을 금방 끊을 수 있을거라 자신했다. '수술하면 안 먹어도 되겠지'라며 약을 받아 들고 나왔다. 수술과 동시에 평생의 동지로 삼아야 하는 신지로이드를 몰라보고 가방에 처박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선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춥지만 청명한 주말의 날씨를 즐겼다.


그래, 하여간 그때나 지금이나 난 여러모로 멍청한 인간이다.


3년이 지난 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전화하면 안 되는 거였다. 딸이 갑자기 전화하더니 자기가 암이라고 말한 뒤 "다시 전화할게."라며 끊은 이 상황을 떻게 소화하라고 나는 엄마에게 그런 폭탄을 던졌을까. 얼떨떨한 정신으로 아빠한테 연락해서 본인도 다 이해하지 못한 말을 전달했을 엄마는 어떠했을지, 엄마 전화를 받고 마른 일상에 벼락을 맞은 상태임에도 상처 받았을 딸내미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자 한 자 고민하며 문자를 보냈을 아빠는 어떠했을지.



“갑상선암,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아빠의 말을 되뇄고 난 그것을 믿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수술 당일까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