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이탈리아 밀라노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다. 그때 패션 경영을 공부하러 온 한 한국인 학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뉴욕의 유명 패션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하면서, 명품을 카피해 1년에 12번 정도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스파 브랜드 옷을 사서 공부하다가 패션으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스파 브랜드는 저렴한 가격에 유행에 따라 옷을 생산하기 때문에, 당연히 품질이 좋지 않은 일회성 옷을 매달 대량으로 생산한다. 이렇게 한 해에 버려지는 옷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 친구는 이러한 문제를 깨닫고 패션 경영을 더 공부해 해결 방안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브랜드도 소개해 주며, 자신의 옷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로 그렇게 옷을 소비해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싸게 옷을 많이 사고, 다음 해에는 입지 않고 버리는 식으로 소비해 왔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은 지속 가능한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그 친구를 만났을 당시에는 이런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그 친구의 말에 영향을 받아 나 역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 이후로 환경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책을 많이 찾아보고, 지속 가능한 삶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개념들이 사람들 사이에 점점 알려졌다. 심지어 이러한 개념을 이용한 그린워싱 기업들도 많이 생겼다. 이런 사회 현상을 보며 나 자신이 더 많이 알고 비판적 사고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리사이클 의류가 정말 지속 가능한 패션의 답인지, 채식이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들이 있다. 가장 큰 것은 에너지 절약이다. 불은 필요할 때만 켜고, 라디에이터도 조금만 틀며 추울 때는 옷을 껴입었다. 샤워하는 시간도 짧았다. 장을 볼 때도 플라스틱 포장이 되지 않은 제품을 최대한 구매하려고 했다. 일상 속에서 사소한 절약이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한국에 오니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여름에 실내는 에어컨 때문에 너무나 추웠고, 겨울에는 히터 때문에 너무 더웠다. 실내외의 기온 차이가 커서 몸이 견디기 어려웠다. 실내 전등은 너무 많고 밝아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택배를 시키면 플라스틱 포장재가 너무 많아 쓰레기가 순식간에 쌓였다. 반면, 카페에서는 매장 내에서는 머그컵만 사용 가능하거나 종이 빨대만 제공되는 환경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카페에 잠깐 들렀다가 나가야 해서 테이크아웃을 요청했더니, 테이크아웃 컵으로는 매장에 머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머그컵에 커피를 받고, 나갈 때 다시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으로 옮겨 담아야 했다. 이렇게 하면 종이컵도 소비하고 머그컵을 씻기 위한 물도 소비해야 한다. 이게 과연 환경을 위한 정책인가 싶었다.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많은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텀블러 사용하기, 종이컵 같은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리사이클 제품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굿즈들이 쏟아져 나온다. 리사이클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필요 없는 제품 소비를 부추긴다. 마치 이 제품을 사는 것이 환경에 기여하는 것처럼 포장된다. 지속 가능한 삶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삶은 모순으로 이루어져, 한편으로는 환경을 생각하는 일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고, 내가 실천하는 것들 중에도 분명 모순이 있을 것이다. 그 모순을 찾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는 나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