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삶을 살다

by 브레첼리나

시작은 단순했다. 프랑스 떼제(Taize)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럽권에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몇 번 걸었는지 서로 질문했고, 다양한 산티아고 순례길 중 어느 길을 걸었는지 서로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순례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라며, 시간이 된다면 꼭 걸어보기를 권했다. 당시 다시 독일에 있었고, 독일어 시험이 끝난 후 입학 준비까지 시간이 여유로워 아무런 고민 없이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2012년 12월 겨울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인 프랑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작하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으러 안내소에 갔다. 그곳에 있던 직원이 여권과 산티아고 길의 상징인 조개껍데기를 주며 했던 말이 있다. 12월, 이 겨울에, 동양 여자 둘이서, 산티아고를 간다니 미쳤냐면서 장난 섞인 말투와 반쯤은 정말 걱정의 눈초리로 길을 잘 완수하기를 기도한다는 말이었다. 출발하는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순례길을 걷는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했는데, 직원에게 그 말을 듣고, 막상 내일부터 걸으려고 하니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나처럼 내일 떠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 사람들을 보니 두려움도 잠시였고 다시 용기가 생겼다. 길을 잘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스페인이지만 겨울에는 추웠다. 해도 빨리 졌다. 비도 오고 첫날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걷기 시작한 첫째 날부터 온몸이 축축해져 덜덜 떨며 숙소에 도착하니, 후회가 몰려왔다. 첫날부터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내가 상상했던 길과는 너무 달랐다. 산 길에다 오르막길이었고, 햇빛도 없고, 길도 아름답지 않았다. 숙소에는 다 유럽 아저씨들 뿐이었는데, 어찌나 땀냄새가 지독하던 지 같은 방에서 자야 한다는 게 끔찍할 정도였다. 그래도 길을 멈출 수 없었다. 좋은 길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길을 다 걸으면 내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겠지 라는 믿음으로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길을 걷는 하루는 참 스펙터클하다. 처음 길을 나설 때는 기분이 상쾌하다. 왠지 이대로만 가면 오늘은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새벽에 출발해 해가 뜨는 것을 볼 때면 오늘 나에게 펼쳐질 길이 아름다울 것만 같다. 하지만 그 기분은 금방 사그라들고 만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돼서, 몸에는 땀이 나기 시작하고, 점심에 먹을 빵을 살 가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발에난 물집 때문에 잠깐 쉴 수도 없다. 쉬었다 걸으면 그 아픔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길에 빠져들 때가 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거다. 오직 걷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같이 걷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희망도 고통도 없는 때이다. 그렇게 한참을 땅을 보며 걷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러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 같은 길도 만나게 되고, 아름다운 풍경도 만나게 된다.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도 갇게 된다. 또 나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마추지면 인사를 해주고 힘내라는 말도 서로 해준다. 그 말이 어찌 그렇게 힘이 되는지, 몸까지 가벼워져 다시 걷게 된다. 오늘 묵을 숙소를 발견하면 어찌나 기쁘고 감사한지, 별 탈 없이 걷고 도착한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삶이 길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이 길의 목적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걷는 것만이 목적인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힘들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길을 걷는데 영향을 주는 것도 너무나도 많다. 날씨, 땅의 상태, 숙소,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 등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면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불평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살다 보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왜 살게 되었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잊어버린다. 오직 살고 있는 것 만이 목적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살아지기도 하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다. 지치기도 하지만, 우연한 것에, 아주 사소한 것에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게 된다. 나는 길을 걷는 것이 좋다. 삶을 사는 것도 좋다. 내 삶에 고통이 존재하지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기도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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