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가 맛있다고 처음 느낀 맥주는 스코틀랜드 여행 중 마신 '기네스'이다. 그전에도 맥주를 마셨지만, 단순 히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 잔 하거나, 시원한 음료로 마신 것이 전부였다. 혼자 맥주를 즐긴다거나 맥주가 주는 삶의 작은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네스를 스코틀랜드 여행 중 처음 마셔본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이미 1년 넘게 살고 있었다. 독일에 있는 아이리쉬 펍에서 친구들과 기네스를 마신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이었을까, 여행이 주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때 마셨던,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그 '기네스' 맥주 이후로 나는 맥주에 빠지게 되었다. 맥주가 주는 작은 위로와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독일에서 어학을 '본'이라는 독일에 서쪽에 있는 도시에서 했다. 그곳에서는 주로 '쾰시'(Kölsch)라는 쾰른에서 제조한 맥주를 마셨다. 에일과 라거의 방식이 혼합된 맥주로 황금빛의 달달한 맛을 느낄 수 있따. 쾰시도 종류가 다양한데 나는 호불호 없이 쾰시라면 다 즐겨 마셨다. 쾰시는 길고 홀쭉한 0.2 또는 0.3L 용량의 잔에 마시는 맥주로, 잔의 용량의 적은 것은 맥주를 최대한 시원하게 마시고 싶어서이다. 이 지역 식당 특징은 웨이터들이 맥주잔 밑에 놓는 코스터에 개수를 표시하며 맥주를 계속 서빙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새 웨이터들이 내가 마신 잔을 치우고 새 잔을 갖다 주며 내 맥주 코스타에 표시를 하는데, 거절하지 않으면 계속 가져다 주니 조심히 적당히 마셔야 한다. 나는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고, 또 당시 가난했던 어학생 시절이라 한 잔만 마셨는데, 당시 독일식 수제 햄버거와 함께 마시던 소중한 쾰시 한 잔이 지금도 참 그립다.
독일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남쪽에 있는 '뮌헨'이라는 도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 축제가 있는 맥주의 본 고장인 곳이다. 독일은 맥주로 유명한 나라 중 하나다. 각 지방마다 고유의 맥주를 만들고 마시며, '주'(州)에 따라서 주로 마시는 종류의 맥주도 다르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해서 맥주는 우리 지방 것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맥주부심이 어마어마한 뮌헨에 살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맥주를 좋아하는지 식당에서 맥주를 달라고 하면 기본 0.5L 잔에 준다. 한 번은 0.3L의 맥주를 시켰는데, 웨이터가 우리 식당은 0.3L는 취급 안 한다며 적어도 0.5L는 마셔야 한다며 농담 섞인 진담을 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맥주를 들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도 꽤 있었다. 당연히 우리 학교가 조금은 자유로운 예술학교라 가능했지만, 다른 학교에 가서도 맥주 한 병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자주 마주친 적이 있다. 확실히 독일의 다른 지방보다 맥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뮌헨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면 '테건제'(Tegernsee)라는 아주 이쁜 호수 알프스 마을이 있다. 학교를 같이 다니던 한국 언니 2명과 날씨 좋은 날에 그곳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테건제에서 먹는 학센(돼지 족발 요리)과 맥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내가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하자, 언니들이 가자고 한 것이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언니들이 아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니 정말 기대가 되었다. 도착하니 뮌헨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동화 속 마을이 펼쳐진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호수를 끼고 있는 동네라 마을 이름도 그 호수의 이름이었고, 맥주도 그 호수의 이름이었다. 테건제라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에서 식당을 같이 운영했는데, 마을 중심지에 아주 크게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으면 호수와 알프스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그 식당으로 향했다. 학센 하나와 각자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독일에 전통 옷인 '딘들'(Dirndl)을 입은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여자 웨이터가 한 손으로 0.5L의 맥주 3잔과 큰 학센 하나를 다른 한 손에 들고 우리에게로 향했다. 무심히 우리 테이블에 음식과 맥주를 놓으며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와 함께 바삐 돌아갔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각자 맥주를 잡고 'Prost'(독일어로 '건배') 외치며 잔을 부딪히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다들 '와'하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때 마셨던 맥주가 '기네스' 다음으로 정말 맥주가 맛있다고 느꼈던 맥주였다.
그 이후 나의 학창 시절의 모든 주말을 '테건제'와 함께 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마트에 들러 '테건제' 한 병을 사서 집에 와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만들고 그 스파게티와 테건제를 함께 먹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나 예능을 보았다. 이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즐거웠는지, 나의 힘들고 지쳤던 유학생활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한국에 오니 주위에서 어떤 맥주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독일에 오래 살았으니,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 질문에 나는 어김없이 '테건제'라고 답한다.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독일에서도 '바이언' 주에서만 마실 수 있으니 독일에서도 유명한 맥주는 아니니 말이다. 나의 작은 행복이었던 맥주가 나는 지금도 참 좋다. 여전히 맥주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쾌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