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늙는구나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먼지 하나 그냥 못 넘기는 엄마가 설거지하면서 컵에 붙은 고춧가루를 남겨두었다거나, 칼 같던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엉성하게 한다거나 하는. 엄마의 일상 속 허들이 낮아지고 느슨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코골이도 그중 하나였다. 5년 전 즈음인가, 늦은 밤 부모님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길래 아빠가 피곤하셨나 보다 했는데 웬걸, 코골이의 주인공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아빠는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흐트러짐 없는 엄마가 알면 많이 당황스러울 거라고. 그날 이후로 코 고는 소리는 계속 됐는데, 지금까지도 엄마는 본인의 코골이를 모르는 것 같다. 아빠의 다정한 마음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는 거겠지.
믿고 싶지 않지만, 며칠 전 나도 코를 곤다는 걸 알게 됐다. 잠결에 얼핏 코 고는 소리를 들은 거였는데, 당연히 남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코골이가 심해서 양압기를 착용하고 있고, 가끔 답답하면 잠결에 벗어버리곤 하니까. 그날도 그랬으려니 했으나, 아니었다. 설마 하며 며칠간 녹음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범인은 나였다.
"당신 코 고는 거, 그냥 쌕쌕거리는 정도야. 그 정도는 코골이도 아니지. 하나도 안 거슬려."
내가 재차 묻자 남편은 조심스럽게 털어놓듯 말했다. 남편도 이미 나의 코골이를 알고 있던 거였다. 아, 이런. 서글펐다. 남편이 코를 골 때마다 타박을 서슴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젠 정말 추한 모습만 늘겠구나 하는 생각에 수치심마저 들었다.
그동안 나이 들어가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푹 자고도 몸이 개운치 않아도,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혀도, 더 이상 새치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흰 머리카락이 솟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코골이는 너무 세다. 되도록 덜 흉하게 늙고 싶은데.
챗GPT에게 코골이의 이유를 물었더니, 나이 들수록 목 주변 근육의 탄력이 떨어져서 그렇단다. 나이 든다는 건 그렇게 팽팽하고 꼿꼿했던 것들이 느슨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건가. 내가 엄마의 달라진 일상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거라면 예민하고 까탈스런 내 성격부터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 좀 허술하고 무디고 희미하게.
요즘 자기 전 해야 할 일이 늘었다.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수면 테이프를 붙이고, 턱이 열리지 않도록 압박밴드도 한다. 단단히 무장한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니 웃프다. 세월을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가 꽤나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코골이는 진짜 별론데!
"여보, 그동안 코 곤다고 구박해서 미안해... 부끄럽지만 이제 함께 하자. 가끔 피곤한 날은 양압기 떼고 누가 더 우렁차게 코 고는지 대결도 하고 말야. 하하하ㅠ"
"소리가 작아서 괜찮다니까~ 하지만 이제 당신도 자도자도 피곤하고, 잠이 들거나 깰 때 꿈도 많이 꿀 거야. 백수 기간에는 쌍낮잠 많이 자고, 다시 맞벌이 되면 쌍양압기 쓰자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