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은 월급날이었다. 직장을 꽤 옮겨 다녔었는데도 급여일은 매번 같았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최근까지 다니던 회사는 출근시간에 급여를 입금해 줬다. 이 얼마나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인가. 월급 들어왔단 알림 문자를 보면서 고된 출근길 기운내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비록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숫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월급은 힘이 세다. 그래서 서글프고 분할 때가 많았다. 품에 넣어둔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다가도, 급여 입금 알림 문자에 슬그머니 손을 거두던 날들이 얼마나 부지기수인지. 기어이 사직서를 묻고 묻어 묵은지의 반열까지 끌어올리고 나서야 회사를 등지게 만들었던 건 마지막까지 월급이었다.
일은 많고 힘든데 보람마저 없고, 동료와 상사는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조차 어렵고, 조직이 굴러가는 모양새는 영 답답하고... 이런저런 속 시끄러운 상황도 '금융치료' 한 방이면 만사 OK! 애써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나 자신에게 느꼈던 자괴감은 지금 생각해도 입이 쓰다.
사실 나야 회사원과 자영업자를 수시로 오가며 이직도 잦았고, 그 사이 텀도 들쭉날쭉해서 월급에 대한 감상이 이 정도라지. 거의 평생 쉬는 틈 없이 월급 받으며 일해온 남편은 월급의 고마움을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다 보니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수입이 예상보다 긴 시간 끊기니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생활비를 제외하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월급을 아낌없이 털어 쓰는 사람이었다. 특히 부하직원들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걸 너무 좋아해서 본인 월급을 팀 운영비처럼 써버리곤 했다.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사람 좋아하는 게 남편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니까.
그랬던 사람이 반년 넘게 혹독하게 놀아보더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다시 월급을 받게 되면 밥도 덜 사고 저축도 많이 하겠단다. 그 돈으로 휴가 때마다 나와 함께 갈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10'도 이미 작성해 두었단다. 두고 볼 일이다.
여튼 지금의 나에게 25일은 반갑지 않다. 카드값이며 공과금이며 자동이체일을 월급 들어오는 25일로 맞춰두었더니, 아침부터 울리는 자동이체 알람에 신경이 바싹 곤두선다. 잔고 말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쩍쩍 갈라지는 통장 밑바닥에 물 대줘야 할 때가 왔다.
사회생활에 지쳐서 혼자인 게 마냥 좋은 나도 25일이 되면 아주 조금 그리워지곤 한다. 월급날이라며 퇴근 후에 동료들과 맥주 한 잔씩 기울이던, 오늘만큼은 내가 내겠다며 서로 카드를 내밀던. 월급보다 월급날이 더 그립다.
"여보, 진짜 다시 월급 받으면 규모 있게 써보자. 팀원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게 기분 좋은 건 그때뿐이라는 거, 내가 배고프면 다 소용없다는 거 잘 알았으니까. 알았지?"
"알겠습니다. 진심으로요. 하지만 항상 당신을 제일 먼저 맛집에 데려갔던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