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건 몸무게만이 아니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서 어느덧 두 번째로 심장사상충 약을 바르러 가는 날이 되었다. 한 달 간격을 두고 바르는 약이라는데 언제 한 달이나 지났나 싶었다. 한 달이나 여명이가 내 방에 있었는데도, 아직도 가끔 이게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사이 나와 여명이에게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여명이는 점점 호기심이 많아졌고, 행동반경도 더 넓어졌다. 내 방 안 모든 공간의 냄새를 맡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위험하지 않은 공간은 거의 다 여명이에게 열어줬지만, 여명이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지 못했다. 캣타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옷장이나 책장 위를 더 좋아했고, 집안 청소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먼지가 있는 공간을 귀신 같이 찾아내서 그 위에서 뒹굴곤 했다. 지난 달에 시크하던 그 고양이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기가 막혔다.
신체적인 변화들도 있었다. 2차 심장사상충 예방을 하러 가서 체중을 쟀을 때 여명이는 1.2kg이었다. 불과 2주 전에 980g인 걸 보고 놀랐는데, 또 늘었다. 나는 매일 보니까 애가 큰 것도 모르겠더니, 거의 2주마다 여명이를 만나는 동물병원 선생님은 볼 때마다 여명이가 부쩍 컸다고 하셨다. 그리고 처음에는 허피스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던 눈과 잔뜩 짓물러 있던 코 옆 피부도 많이 나았다. 하이고...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부모님도 이제 여명이가 좀 고양이 같다며 신기해하셨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서 잘 몰랐는데, 옛날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여명이가 정말 많이 고양이다워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약을 넣어줄 때마다 이 눈이 언제 다 나아서 입양을 가나...했는데, 어느새 눈이 또렷해졌다. 눈과 코 부근의 짓무른 피부도 약을 바르면 진짜 낫긴하는 걸까 매번 의심했는데, 의심한 게 미안할 지경으로 예쁘게 털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삐쭉새 같더니 여명이는 사실 좀 예쁜 고양이었나 보다. 여명이에게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애착 바지와 수세미를 좋아하던 여명이에게 새로운 애착 인형이 생겼다. 우연히 들른 잡화점에서 바스락 인형을 발견해서 업어왔는데, 생각보다 여명이가 많이 좋아했다. 만질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서인지, 여명이는 하루 종일 그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둘이서 사진을 찍기 위해 같은 담요를 덮어줬을 때도, 여명이는 잠잠했다. 저 인형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여명이를 집에 데려와서 제일 짠하고 보람있는 순간은 여명이가 마음 편히 잘 때다. 짧기는 했어도 고단한 길 생활을 거친 여명이가, 내 방에 와서는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고 온 친구처럼 쓰러져 자는 걸 자주 봤다. 여기서는 마음을 놓고 자도 된다는 걸 아는 건가 싶어서 괜히 짠했다. 이상하게 또래보다 작아 보이는 여명이가 짠해서 더 많이 자고 쑥쑥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요즘도, 나보다 팔자가 더 나아 보이는 데도 여명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 짠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여명이는 환경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완벽하게 적응했다. 내 배 위에 앉아서 그루밍을 하다가 잠이 들 때가 제법 많았고, 내가 자려고 누우면 자기도 착착 걸어와서 내 몸 어딘가에 몸을 붙이고 잘 준비를 했다. 적응해준 건 고마운데,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가끔 있다.
여명이는 눈과 피부가 나으면서 엄청 귀여운 아깽이로 변화했다.(냥불출) 처음보다는 제법 많이 큰 것 같긴 한데, 어떨 때 보면 아직도 영락없는 뽀시래기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는데, 그 사이 여명이는 많이 나았고, 많이 컸다. 그리고 나도 여명이와 함께 성장한 시간이었다. 책으로, 유튜브 영상으로만 배웠던 고양이와 함께 부대끼며 살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아직도 여명이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잘 케어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이제 여명이가 많이 불편하지는 않도록 돌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여명이가 오고 나서 한 달이 이렇게 지나갔다. 여명이와 내가 언제까지 한 집에서 복닥복닥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맞춰가며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