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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Sep 07. 2020

떨어져 사는 연습

서울 남자 여명이의 경기도 한 달 살기

8월 중순 이후로 나는 본격적인 여명이 입양 홍보를 시작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입양 홍보글을 올렸고, 주변에 혹시 고양이 입양 계획이 있는 지인이 있는지를 부지런히 확인했다. 2주 가까이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음에도 여명이 입양 문의는 0건이었다. 처음 여명이를 구조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픈 곳이 다 나아서 귀여운 데다가 애교까지 철철 넘치는 우리 여명이 가족 찾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입양 홍보글을 올리면서 나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고양이를 봤다. 상황이 여명이 보다 훨씬 급한 친구들도 많았다. 며칠 안에 가족을 찾지 못하면 보호소로 가야 하는 아기 고양이들도 있었고, 벌써 1년째 입양을 가지 못해 입양 홍보 중인 고양이들도 있었다.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 같은 이름과 달리 보호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라는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우리 여명이의 입양이 조금 더 늦어지더라도 그 친구들이 먼저 가족을 찾았으면 했다.

그대로 두었으면 자연의 섭리대로 살았을 여명이의 삶에 내가 멋대로 개입했으니, 여명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구조할 때부터 내가 보살필 여력은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명이가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만 케어하다가 좋은 가족을 찾아줄 작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평생을 사랑으로 보살펴 줄 좋은 가족을 찾는 일 자체가 일단은 어려운 데다가, 심지어 올해는 코로나의 영향까지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더 위축된 상황에서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게 누구에게라도 쉽지는 않겠다 싶었다. 이 생각을 여명이를 구조할 때 더 찬찬히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걸 알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여명이를 모르는 척하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꼭 평생 예뻐해 줄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점점 애교가 많아지는 여명이를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쏜살같이 흘러갈 아깽이 시절을 여명이의 진짜 가족이 못 보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이런 누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명이는 내가 집에 있으면 치대느라 바빴다.

지금 유튜브가 눈에 들어오냐옹!!!!

입양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2개월 정도는 당연히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2개월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직 입양의 ㅇ도 낌새가 없는 여명이의 입양길에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1인 가구 세입자인 나는 9월에 이사를 해야 했다. 내가 여명이와 함께 살 집을 알아보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예비 세입자들이 보러 온다는 것. 부동산에서는 내가 없을 때도 집을 보러 올 것이고, 내가 집에 있다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수시로 현관문을 여는 상황을 여명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사람들의 부주의로 여명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한 달만 믿을만한 곳에 맡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언제나 든든한 비빌 언덕인 본가였다. 그러나 아빠가 동물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하기 때문에 본가는 애초에 고려 대상에 둘 수 조차 없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1시간 반이 걸리는 동생 집이 두 번째 후보였다. 동생도 1인 가구인 데다가 직장인이라서 새벽에 크레이지 파티광이 되는 여명이를 맡겨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여명이 1호 팬이었던 동생은 흔쾌히 여명이를 한 달 동안 맡아주겠다고 했다. 동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른 채 화장실과 캣타워 위치를 어디로 할지 즐거운 고민을 시작했다.

이사를 하기로 한 주말을 앞둔 저녁, 퇴근한 나는 여명이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시 올 거니까 너무 많이 챙기지는 말아야겠다 싶다가도, 혹시 동생 집에 있는 동안 입양을 가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짐 가방은 점점 커졌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1시간 반 동안 차를 타도 괜찮을지 걱정이 줄줄이 이어져서 여명이의 2시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도 나는 잠을 못 이뤘다. 다음 날 아침, 아빠와 동생이 찾아와서 여명이의 첫 이사가 시작되었다. 여명이가 차를 타게 되는 건 입양 가는 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사정으로 여명이를 멀리 옮겨야 해서 미안했다. 멀미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명이는 차를 여러 번 타 본 고양이처럼 얌전히 앉아서 화창한 창 밖 구경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너 누나 몰래 차 타본 적 있지...?

동생 집에 무사히 도착한 여명이는 예상대로 옷장 아래 망부석이 되었다. 나와 동생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옷장 가까운 곳에 사료와 물을 놔주고 캣타워며 화장실을 정리했다. 처음 내 공간에 왔을 때도 여명이는 며칠에 걸쳐 적응을 했으니, 이번에도 하루는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기특한 여명이는 3시간 정도가 지나자 나와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우다다까지 선보였다. 혹시 적응을 못할까 봐 동생 집에서 같이 자려고 주말에 이어 연차까지 쓰고 왔는데,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다음 날도 여명이는 동생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처럼 활발하게 잘 놀았다. 이미 거의 매주말마다 여명이를 보러 놀러 왔을 만큼 동생이 여명이를 예뻐해서, 동생 무릎에서 잠까지 푹 잘 정도로 여명이는 동생을 잘 따랐다. 동생이 새벽 2시의 여명이를 보고 좀 당황한 것 외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나는 동생과 여명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네 집에 온 첫 날부터 꿀잠자던 여명이

집에 돌아오는 동안 여명이 없는 집이 너무 허전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왔더니 여명이의 빈자리가 허전하기는 해도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모처럼 조용히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여명이를 만나기 전처럼 저녁 시간을 보냈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여명이가 있어서 그렇게까지는 쓸쓸하거나 마음이 허전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해라는 건 자기 직전에 깨달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뭐가 발에 걸려서 봤더니, 여명이가 아끼는 쥐돌이가 이불속에 들어있었다. 이거 여명이가 좋아하는 건데 두고 갔네,라고 생각하자마자 그때부터 눈물이 펑펑 났다. 챙겨간 장난감이 한 보따리거나 말거나 여명이가 좋아하는 쥐돌이를 놓고 간 것도 슬펐고, 내 사정으로 멀리 이사 간 여명이한테 미안해서 슬펐고, 새벽 2시에 날뛰어야 할 여명이가 내 방에 없는 것도 슬펐다. 앞으로 한 달이나 여명이랑 헤어져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싶었다.

다음 날 동생한테 어젯밤 이야기를 했더니 오바 좀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동생 집에서 한 번도 안 울었던 여명이가 어젯밤에는 현관 쪽에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 중에 우는 여명이 때문에 잠을 못 잔 동생도 울고 싶었다고. 그렇게 셋 다 통곡의 밤을 보낸 다음날, 나는 퇴근하고 동생 집으로 갔다. 그 다음날 출근길에 죽도록 후회하겠지만, 여명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밤새 현관에서 울었다던 여명이는 막상 내가 도착하니까 본체만체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여명아 밖에 비 많이와. 누나 비 엄청 맞고 왔어. 아니 생색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라며 구시렁거리거나 말거나 여명이는 동생이랑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에 울었다길래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랬나 했더니, 그냥 낯설어서 울었나 보다. 내 이사 때문에 시작된 여명이의 한 달 살기로, 나는 여명이를 입양 보낸 뒤에 내가 느낄 허전한 마음을 조금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허전한 마음은 누나가 잘 감당해볼테니 여명이가 하루라도 빨리 좋은 가족을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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