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충분하다(1)-입장

by 향다월


해가 질락 말락, 우유부단하게 시간과 공명하고 있을 때, 열댓 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치킨집을 나서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내용 때문인지, 둘의 나란히 걷는 모양새 때문인지 다른 무리들은 둘에게 선두를 내어줬다. 그 둘과 다른 일행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나머지 무리들의 이야기가 꽃피는 만큼 둘의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불꽃처럼 격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말을 끊고, 듣는 척하며 다시 말할 준비를 하다 보니, 둘은 다리가 아니라 기억으로 걷고 있었고, 귀가 아니라 입으로 말을 주고받게 됐다. 안경을 쓴 청년과 곱슬머리를 한 청년은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이 어느새 새하얗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익숙한 거리의 상권들, 조금만 뒤를 돌면 보이는 일행들의 느긋한 모습, 곧 건너야 할 횡단보도까지 전부 하얀 덩어리가 됐다. 두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면 볼수록, 표백된 덩어리들은 엄습하는 답답함을 느낀 순간처럼 땅으로 꺼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오르막과 내리막은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이 되었다. 새하얀 직선을 빙자한 평면 위에 두 청년만 수직으로 우뚝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둘은 이 공간 혹은 순간의 아주 간단한 규칙을 몇 개 발견했다. 한 명이 말하기 시작하면, 말을 마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절대 말할 수 없고, 하염없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상대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경을 쓴 청년이 이미 열려있던 입에서 먼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