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충분하다(3)-1합 2/2

by 향다월




"니가 어떤 취지로 그러는지는 나도 잘 알아. 나도 이 동아리가 너무 고마워. 다양한 얘기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재밌고. 근데 니가 가끔 하는 진지한 대화는 사실 대화가 아니야. 니 혼자 말하는 거지. 애초에, 시간은 유한해. 우리가 날을 잡고 모여서 대화를 해도, 자정이 되기 전에 막차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고, 해가 뜨면 첫차를 탈지 말지 고민해야 돼. 첫차를 보내면 아침 수업을 갈지 말 지도 고민해야겠지. 우리는 무한정 대화를 할 수가 없어. 모든 행위가 그런데 유독 대화만 원 없이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건, 시간을 제외하고 대화를 하는 데에 소비되는 게 없다고 인식되기 때문이야. 근데 그렇지가 않아. 정신력은 당연한 거고, 감정도 많이 소모돼. 내가 생각하기에 대화의 조건은 차례야. 탁구처럼, 오고 가는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거지. 근데 모든 대화가 그런 건 아니야.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은사를 뵙고 조언을 청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선생님이 당연히 말을 우리보다 더 많은 빈도와 양으로 뱉겠지. 거기서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지 않아. 선생님이 안 좋은 태도로 안 좋은 내용만 뱉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그런 종류의 대화를 원했기 때문이고, 모종의 상하 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야. 근데 너는 충분한 대화는 가능하다면서 일단 니 말만 먼저 뱉잖아. 그런 상황에서 너는 너의 말을 들은 상대가 반론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거지 정확히는. 근데 기본적인 대화의 조건부터 어그러진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 언어를 맞은 상대는 반론할 기회도, 의지도 사라져 버려. 그리고 니가 정말 좋은 얘기만 골라서 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우리 수능 준비할 때를 떠올려봐. 인터넷 강의들은 분명 좋은 내용이야. 근데 우리는 그 강의를 풀로 몇 시간이고 듣지 못해. 집중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니가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대가 그걸 들어줄 지성과 관심이 있더라도, 그렇게 많이, 쉼 없이 뱉으면 상대가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야. 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야 니 언어가 온전히 상대에게 전달되겠지.


니가 신입부원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심도 있는 토론을 원하는 것도 너의 그런 욕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전체적인 유형은 정해야겠지. 근데, 우리가 그 사람이 쓴 서류와 몇 분의 면접 시간으로 상대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분명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드는 부원도 생기겠지. 그런 마찰은 필연적인 거야. 너는 그 마찰을 정돈된 언어로 사전에 원천 봉쇄하려고 하는 것 같아. 나느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피할 수 없는 건 피하지 말아야지. 아까 말한 너의 대화 버릇까지 포함해서, 내가 봤을 때 오늘 치킨집에서 너는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고 생각해. 유의미하기 힘든 주제를 억척스럽게 진행하니까 술자리 분위기가 이상해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