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충분하다(2)-1합 1/2

by 향다월




"나는 우리 동아리 신입 부원을 뽑을 때 할 수 있는 대비는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 동아리는 단순히 술 많이 먹고 쉽게 친해지는 그런 동아리가 아니잖아. 우리는 영화를 사유하고, 비판적 담론을 지향하고, 열린 사고로 선입견과 기성주의를 타파하는 그런 집단이야. 다른 곳에서 쉽사리 할 수 없는 이야기와 생각을 공유하는 곳이잖아. 그렇게 모인 우리기에 잘 맞았고, 서로 즐거웠지만, 최근 들어 너무 친함에만 몰두한 감이 없잖아 있어. 확실히 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화상 어플로만 활동을 해서 결속력이 많이 부족했어. 올해 초에 뽑은 신입부원이 전체 부원의 80프로 이상이었으니까 올해 우리들은 빨리 친해지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했어. 잘못하면 이 공간 혹은 집단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으니까. 실제로 잘 지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해. 하지만 서로 가까워지고 편해지면서 학기 초에 나눌 수 있었던 진지한 대화들은 많이 줄었어. 이젠 모여도 재밌는 얘기 밖에 안 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형이랑 날 포함해서 몇명 되지 않아. 이러면 우리가 모인 의미가 퇴색되잖아? 이번에 신입부원을 어떤 인간 군상으로 몇 명 뽑을지는 굉장히 중요한 안건이고, 부장인 나 혼자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이번에 밥 먹을 때 여러 명 모였으니 같이 이야기해 보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 근데 형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그렇고, 내 입장을 차분히 말하고 있는데 왜 내가 적당히 그만했음 하는 분위기인 거야? 형은 이런 상황을 얼추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 흐름을 주도한 거야?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끔 이런 분위기가 흐르는데, 형이나 다른 사람들은 귀찮은 거야 아님 대체 무슨 감정이야? 다른 집단도 아니고, 우리들끼리는 이런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분위기를 권장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형 같은 성격의 사람은 그걸 도와줘야 하고. 그리고 이런 흐름을 끊을 때마다 형이 쓰는 논지는 동의할 수 없어. 왜 말을 자꾸 줄이라는 거야? 해야 하는 말을 바꾸면 그 안에 담기는 의미도 다 달라지는 거야. 조금 길지라도 끝까지 뱉은 말은 분명 의미가 있는 거야. 그런 대화를 하는 우리들의 시간도 의미가 있는 거고. 우리가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닌데 왜 그 조금 긴 거를 못 참는 거야? 지금 우리끼리 얘기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하는 건데, 내가 그렇게 뻔한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내 얘기를 끝까지 듣는 게 절대 시간 낭비, 감정 낭비가 아니라고. 그리고, 내 얘기 중에 반론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내 말 끝나고 하면 되잖아? 충분히 진행시켜도 되는 상황인데 다들 대화 자체를 피하려고 그래. 이건 반드시 성찰할 필요가 있는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