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새로운 제 모습에 대한 불안은 일상에 종착합니다. "
최 씨는 지금까지 마신 술이 맥주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는 소주였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살면서 기부한 가장 큰 금액이 얼마인가요?"
김 씨는 별 고민 없이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보여줬다.
"그렇군요, 단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죠.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준 것 만 따졌을 때 4만 원입니다. 쉬는 날, 친구들을 만나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한 남성이 열차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한쪽 팔이 없었어요. 어느 쪽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저보다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숨은 상실도 있었어요. 그는 거동이 불편했는데, 그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데 억지로 걷는, 재활의사들이 싫어하는 종류의 몸짓이었어요. 그는 매우 크게 흔들리면서 각 좌석과 좌석에 앉아있는 분들 무릎에 코팅된 종이를 한 장씩 내려놓았습니다. 무게중심 따위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서 있었는데, 빈 좌석에 있는 종이를 들어 읽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크게 다쳤고, 직업과 돈이 없는데 먹여 살릴 가족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죠. 사실 이 내용 자체는 제게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몸짓! 비명을 독무로 승화한 그 불편함을 저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제 지갑에는 현금 9만 원이 있었죠. 그때 저는 5만 원짜리 한 장만 띡 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액수는 더 적을지라도 두꺼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반사적으로 그 의도치 않은 춤꾼에게 4만 원을 지어줬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어머 하며 놀랐습니다. 그 아주머니를 그리 좋게 볼 수는 없었어요. 아주머니가 그에게 돈을 주었든 안 주었든 말입니다. "
김 씨는 하품을 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려 목구멍의 크기를 체감하며 최 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최 씨는 건배 없이 맥주를 들이마셨고, 김 씨는 이를 존중했다.
"오늘 오면서 느낀 건데, 보통 지하철을 타면서 휴대폰을 하지 않습니까? 시간을 좋게 쓰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에요. 그런데 휴대폰을 하자니 손잡이를 잡을 수 없고, 오른손 없는 오른팔을 봉에 감아 휴대폰을 하자니 너무 우스운 겁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새로운 저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제대로 의식했습니다. 그 타인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생면부지일 소시민의 일종이죠. 그걸 느끼니 지하철을 타면서 고민할 문제는 휴대폰 사용이 아니라, 제 오른손이 있었던 영역을 감추냐 안 감추냐로 뒤바뀌었습니다. 영원히요. "
이번에는 김 씨가 잔을 비웠고, 먹을 생각 없는 튀김 안주를 젓가락으로 괜히 건드렸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래요. 저를 바라보는 종업원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나를 알아챈 손님들이 있을까, 있다면 우리 테이블과 거리는 얼마나 될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당신도 어느 정도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혹시 우리 때문에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작아지는 건 아닐까요? 우리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담배를 더 잦게, 오래 피는 건 아닐까요? 그건 우리의 잘못일까요? 애초에 잘못인 걸까요? "
최 씨는 튀김을 하나 집어 먹으며 질겅질겅 입 안에 없는 것을 씹었고, 김 씨는 이내 머릿속으로 곱씹다가 튀김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슬슬 일어납시다.”
최 씨는 금세 조금 남은 맥주잔과 눈씨름 하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오늘 만나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양새 빠지게 넋두리나 실컷 했네요. 저는 오늘 크게 걱정했습니다. 신나게 말하긴 했지만, 혹시 당신이 지금 당장 자리를 뜨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을 까봐요. 제가 눈치도 없이 당신을 위해 분주하게 일하는 시침을 외면했을 까봐요.”
김 씨는 듣고 있었다.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
최 씨는 계산서를 챙기려 왼손을 움직였고, 김 씨는 계산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냅킨을 한 장 뜯었다. 코트 안 주머니에 있던 펜도 꺼냈다. 그 안 주머니에는 작은 노트도 있었고, 그 노트는 막 다 쓴 상태였다. 김 씨는 자기 노트는 생각하지 않고 냅킨에 무언가를 섰고, 최 씨는 이를 받았다.
‘2차 갑시다.’
최 씨는 호방하게 웃으며 일어섰고, 계산서를 낚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