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저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최 씨는 빨리 자신의 취기가 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진짜 장애인의 기준을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진짜 장애인이라는 칭호가 무슨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지 그전에 말이에요. 그건 장애인 자신이 자신을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 씨는 당연한 말을 당당하게 한 것 같아 불현듯 부끄러웠지만, 이번에도 김 씨의 시선은 살짝 팽팽해지며 다음 말을 끌어냈다.
“저는 40년 좀 안 되게 비장애인으로 살았고, 주변 사람들도 제 잃어버린 오른손에 집중하지, 오른손을 잃어버린 오른팔에 집중하지 않아요. 저를 생판 모르는 사람도, 제가 주머니에 깊숙이 양손을 꾸겨 넣으면 제 장애를 발견하지 못하죠.
그리고 실생활에 큰 지장도 없습니다. 물론 많이 불편하지만, 그게 치명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만약 어떤 사람이, 강제로 지금 당장 세상의 일부분을 이해하라고, 그렇지 못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해도, 저는 죽을 일이 없습니다. 그가 보라는 영화를 볼 수 있고, 그가 훔쳐 들으라는 남녀의 대화를 들을 수 있고, 전시회를 방문해 보고서를 쓰라고 해도 대중교통은 저를 힘들게 하지 않아요. 회사에서 보고서를 얼마나 썼는데, 글도 그렇게 못 쓰지는 않겠죠.”
김 씨는 묵묵히 최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제가 갑작스럽게 장애라는 분류군에 들어가도 되는지, 오만한 겸손함마저 느껴집니다. 저보다 훨씬 오래, 강하게 고통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분들에게 소속감을 느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 씨는 자신의 맥주잔을 들어 최 씨의 맥주잔에 부딪혔다. 김 씨가 재빠르게 남은 맥주를 털어 넣자, 최 씨도 허겁지겁 잔을 비웠다. 맥주 두 잔이 다시 나오자, 최 씨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다가, 정리한 생각 덕분에 조금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발칙하지 않아요! 당연한 거니까요. 저는 비로소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당연한 시야를 얻었습니다. 장애인은 어디든 존재하고, 그들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김 씨는 다시 자기 맥주잔에 손을 갖다 댔고, 이번에는 최 씨가 먼저 자신의 맥주잔으로 먼저 김 씨의 것을 부딪혔다. 둘은 동시에 몇 모금 맥주를 들이켰다.
“이 시야는 지성의 깊이와는 의외로 상관이 없습니다. 경험이 관건이죠. 문득 학창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저희 반에는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휠체어를 탔고, 정신 지체도 조금 있었던 장애인이었습니다. 다른 한 아이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를 다른 친구들이 평범하게 대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 아이는 억울한 평범함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주먹으로 맞거나, 돈을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놀림은 꾸준히,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교폭력의 피해자임을 당당히 주장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었죠. 확실한 학교폭력 사이에서 말입니다. 저는 당시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니 잘했습니다. 장애인 아이와 억울한 아이 둘에게 큰 관심이 없었죠. 여기서 확실한 사실이 뭔지 아십니까? 지금 동창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술안주 삼는다면, 장애인 아이보다 억울한 아이를 훨씬 자세히, 명확히 기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2차까지 남아있더라도 장애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아이가 지었던 여러 표정들은 선명히 기억할 거면서 말입니다.”
김 씨는 이번에도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묵묵히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물론 그때쯤에는 오른손 없는 오른손 악수 같은 짓은 안 하겠죠. 그래도 아주 짧은 시간에 제 오른쪽 공백을 눈치챌 것이고, 아마 가장 손쉽고 강렬한 첫인상을 자아낼 겁니다. 그리고 천천히 잊히는 거죠. 제 성격과는 별개로, 처음 만나는 모든 사람과 앞으로도 가깝게 지내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저를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저를 잊을 겁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휠체어 주인의 이름을 잊은 것처럼, 그들은 제 오른손을 묵살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절대 제 이름으로 제 오른팔 일부분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중학생 때 고생한 평범한 아이와도 다시 만나고 싶어 졌습니다. ”
김 씨는 자기 입을 살짝 벌리고 검지를 갖다 댔다. 최 씨는 점원에게 메뉴판을 달라고 했고, 메뉴판을 받은 김 씨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메뉴들을 훑으면서 최 씨의 침묵을 귀로 좇았다.
“또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자꾸 옛날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김 씨는 이번에도 시선을 살짝 매만져서 최 씨의 두 눈을 바라봤다.
“예… 뭐 우리 나이에 옛날이야기 좀 할 수도 있죠. 아무튼 대학생 시절, 어떤 여학생에게 반한 적이 있어요. 어떤 요일 동선이 조금 겹칠 뿐이었고, 무슨 과에 몇 살인지도 몰랐지만, 저는 당시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이고, 어떤 과일 지라도 저랑 잘 맞을 거고, 대화도 양쪽 모두 즐겁게, 유려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참 속 편한 시절이었죠. 그래도, 젊음의 소치로 젊음의 아름다움에 도전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전화번호 좀 달라고요. ”
김 씨는 씩 웃으며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이야기의 다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휴대폰을 열었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너무 기뻤습니다. 그녀의 표정도 확인하지 않고 그랬으니, 제가 당시 얼마나 어렸는지 느껴지죠. 괜히 언성이 높아지네요. 그녀가 잠깐 버튼을 톡톡 거리더니, 자기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큰 기대를 등에 업고 그 작은 화면을 들여다봤습니다. 메모장에 따끈따끈하게 작성된 글이었습니다. 자신은 청각장애인입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
김 씨는 다시 맥주잔을 싸그리 비워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취기와 최 씨의 가라앉은 취기를 의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글을 읽고, 급하게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혹시 공학관이 어딘지 아냐고 급하게 메모장에 작성해 보여줬고, 그녀는 친절히, 바로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나온다고 톡톡 소리를 내며 알려줬습니다. 지금 가장 괴로운 부분이 뭐냐면, 제가 밝히진 않았지만 제가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차렸을 것 같다는 겁니다. ”
김 씨는 최 씨에게 눈으로 신호했다. 최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김 씨와 건배했다. 둘 다 적당한 속도로 목을 축였다. 맥주가 목을 넘길 때 나는 소리도 적당했다.
“왜 저는 그때 메모장으로 자주 다니는 공학관 위치를 물어봤을까요? 왜 아까 버벅거리며 소리친 내용을 다시 적어서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당시의 저는 그녀의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일 능력이 부족했던 걸까요? 당시 제 감정은 그럭저럭 따뜻한 봄 날씨 때문에 생긴 먼지 같은 것이었을 까요? ”
최 씨는 맥주를 더 시키려다가 자기 맥주잔을 양손으로 쥐고서 하던 말을 이어했다.
“만약 다른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면, 저도 오늘처럼 오른손 없는 오른손 악수를 청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라면 감히 왼손 악수를 청해도 되는 걸까요? 제 마지막 사랑은 작년이었는데, 그 사랑이 사고 직전까지 이어졌다면 이 답을 알 수 있었을까요? ”
김 씨는 일어설 정도로 몸을 올려 종업원의 시선에 닿았다. 자신과 최 씨의 빈 맥주잔을 번갈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