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세상에 왔을까?
나는 그때 눈치가 는 것 같다.
내가 7살에 학교에 입학을 했으니까, 그보다 1~2년 전인 5~6살에 서울 이모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가정형편 때문에.
친구들이 유치원 갈 시기에 나는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모집에서의 생활이 나에게는 유치원 대신이었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걸까?
집을 떠나 먼 곳, 전혀 다른 환경, 생소한 가족 구성원 속에 덩그러니 떨어져 꽤 긴 기간을 생활한 것인데 이상하리만치 이모집에서의 특별한 기억이 없다.
이모집은 2층 양옥집이었고, 이모부, 언니들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사진 속의 나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소파에서 미소 짓고 있기도 하고, 화분 앞에서 인형을 안고 있기도 하다.
분명 사진에서는 행복해 보이는데 난 왜 이 기간의 기억이 거의 없는 걸까…..
어쩌면 잘 적응했거나, 우리 집보다 불안감이 줄어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때를 복기해보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건 사진에서나 남아있지 기억에 없지만, 딱하나 기억나는 것은….
이모가 시켰을 리는 없는데, 나는 무엇 때문인지 서울 이모 가족의 양말을 빨았다.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빨았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더부살이하는 것이 눈치가 보였던 것일까.
혼자 동떨어져서 다른 집에 얹혀살면서 혹시나 진짜 영원히 버려질 것을 대비해서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일까.
내가 양말을 손빨래하는 것이 귀여워서 이모네 가족은 깔깔거렸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 속의 나는 그걸 귀엽자고 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손빨래를 해봐야 뭐 얼마나 깨끗하게 할 수 있었을까.
나의 눈치와는 반대로 이모는 그저 날 예뻐하셨던 것 같다.
집도 좋았고, 나에게 예쁜 옷도 사주셨고, 잠옷도 입혀주셨다.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늘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긴 기간을 생활해서 그런지 사진을 보면 얼굴도 하얗게 부티가 난다.
그렇게 잘해주신 것 같은데, 나는 그 모든 것이 기억에 없다.
그저 양말 빨았다는 것 하나, 그것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내가 서울에서 사는 동안 우리 집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에 아마 아빠가 택시를 시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모는 이왕 택시 할 거면 서울이 돈벌이가 잘되니까 서울로 올라오라고 종용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완강했다.
엄마가 서울로 올라가는 건 어떠냐고 설득해봤지만 절대 부산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서울로 안 간다고 딱 잘라서 말씀하신 걸까.
그렇게 바닥을 치고 살 거였다면 차라리 서울에서 살았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측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예상이 될 정도로.
그나저나 엄마는 날 서울로 보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의 마음을 여쭤본 적이 없네.
그래도 날 입양 보내거나, 엄마가 우리를 포기했을 법도 한데, 끝까지 안고 갔네.
미운 적도 있지만, 대단하다,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