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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Mar 16. 2023

아, 귀여워!

직장인 3분소설

나이 많은 신입에게 들은 첫마디였다. 신입을 몇 번 겪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처음에 윤 주임이 사무실에 데리고 왔을 때부터 특이해 보이긴 했다. 사수가 된 윤 주임이 사람들에게 한 바퀴 돌며 신입을 인사시켰는데, 뭐랄까, 어딘지 예의가 바르지 않았던 것이다.


윤 주임이 선배직원을 소개하기도 전에 먼저 악수하자며 손을 내민다든지, 간단하게 목을 수그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들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다든지. 인사하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든지. 간단하게 사무실 투어를 시켜주는 윤 주임에게 계속해서 뭘 꼬치꼬치 캐묻는다든지.


의자는 꼭 회사에서 주는 걸 써야 하나요?

커피 원두 종류는 하나인가요?

업무는 처음에 배정 받은 대로만 해야 하나요?

어떤 분께 어필을 해야 하나요?


이것들은 약과였다. 그 후로도 질문은 아주 많이 이어졌고 행여나 아쉬울까 마지막 질문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혹시 자리를 바꿀 수는 없나요? 제가 비염기가 좀 있어서 에어컨 근처는 좀 그래서.


마지막 마디는 말조차 짧았다. 그녀는 회사에서 하란 대로 순응할 생각이 없음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저런 게 MZ세대인 건가 싶으면서도 나이가 찼다면 찼다고 할 수 있는 서른의 나이에 저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때 나는 도쿄의 협력업체와 영상회의 중이었기 때문에 윤 주임이 나를 소개하지 않고 일단 건너뛰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 잠깐 고개를 돌려 눈인사만 했다. 내가 어색하게 눈인사하면 본인도 어색하게 눈인사를 해야 마땅할 텐데, 그녀는 윤 주임이 나를 소개하지 않았단 이유로 내게 인사를 안했다. 황당해진 나는 헤드셋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그녀가 사무실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태도와 윤 주임에게 당당하게 뿜어내는 질문공세를 다 들었다.


이십 분 후, 영상회의를 마친 내가 몸을 부스럭 움직이자 윤 주임이 일어나 다가왔다. 오른쪽에 신입도 대동했다.


“홍 대리님, 영상회의 끝나신 거예요?”

“네. 왜요?”


나는 짐짓 물었다. 시선은 모니터에서 떼지 않은 채.


“아아, 이번에 신입분이 새로 들어오셔서요. 인사 시켜드리려구요.”


신입에게 붙이는 과잉 존대에 내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제 보니 신입의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라 윤 주임의 화법에도 좀 문제가 있었다.


“강 사원님, 이분은 홍수진 대리님이세요. 우리 부서 에이스셔요.”

“아, 귀여워!”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정적이 흘렀다. 정적인지 내 귓가가 멈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가공할 첫 마디에 눈밑이 딱딱하게 굳었고, 곱씹을수록 열이 받아 얼굴이 홧홧해졌다. 주위가 심각하게 조용해진 탓에 나는 오히려 쿨한 척 받아칠 기회도 놓쳤다.


“뭐, 뭐, 네. 감사해요.”


나는 말까지 더듬었다. 바보같기 짝이 없었다. 적막에 떠밀리듯 대답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나이만은 묻지 말기를 기도했다. 그건 정말 너무 굴욕일 것 같았다.


“몇 살이에요? 너무 애기 같은데에, 어떻게 그렇게 프로페셔널해요? 아까도 막 일본어로 쭉쭉 !”


말문이 막혔다. 스물일곱이라고 순순히 대답해야 할지 말지부터 알 수 없었고, 말하든 안 말하고 불쾌한 티를 내든 모바보같아 보일 것 같았다.


회사를 6년 다니며 이런 경우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누구든 일단 직급과 연차를 물어본 다음 조심스레 나이를 물어보았지, 대뜸 나이부터 묻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거래처와 다툼이 오갈 때도 어느 정도 존중받았다. 내가 대리를 달았다는 사실은 그럴 때 불쑥불쑥 내자신을 대견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그런데.


아아, 직급이란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앞에선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


“저기……. 강 사원님.”


내 침묵이 길어지자 윤 주임 수습에 나섰다. 신입이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사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어디서 뭘 하다 온 걸까.


“홍 대리님은 스물일곱살이시긴 한데, 일찍 입사하셔서 훨씬 선배세요…….”

“어머!”


비로소 내 마음에 안도가 찾아온 것 같았다. 보통 나이와 연차를 밝히면 모두들 앞선 실례를 민망해하거나 된 얼굴을 칭찬하는 식으로 수습하곤 하니까.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달랐다.


“윤 주임님은 스물아홉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진짜 짜증나.

내가 언제 ‘윤 주임’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나.

내 얼굴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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