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3분소설
인류는 어떤 우주적 악당과 싸우고 있었다. 너무 거대해서 실체감이 없는, 그러나 분명히 지구를 공격하고 있는 악당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은 지구 밖에서 지구를 무자비하게 흔들어댔다. 마치 청소기 필터에서 먼지를 털어내듯이.
이 지구에서 쓸데없는 사람은 먼지처럼 탈탈 털려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검은 우주공간으로 산산이 떨어져 나간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분명한 건 그 쓸데없는 사람이란 걸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 애매해서, 내가 그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내 바로 옆 사람이 떨어질 때마다 그 공포는 실체가 되어 목을 졸라왔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사람들은 책상 모서리에 처절하게 달라붙었다. 한 명이 떨어지면 나머지는 더 겁에 질려 책상을 움켜쥐었다. 회사 자체가 나가 떨어지지 않는 한 책상 모퉁이에 의지하는 방법이 제일 나았다. 그렇게들 믿는 듯했다. 사실이건 아니건. 그리고 옆 사람이 떨어져 나가면 어차피 다른 새로운 사람이 금방 그 자리를 채웠으므로 사람들은 더 그렇게 믿었다.
사실 어제까진 그 범지구적 문제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는 남의 일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내 동기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석이 떨어져 나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때부터 내 지구도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밤새 잠을 설치다 발을 헛디디는 꿈을 꿨다. 새파랗게 질려 눈을 뜬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일어나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눈에 보이는 대로 책상 위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대로 아찔한 무중력에 휩싸였다. 마우스가 그대로 내 무게에 끌려 지구에서 수직으로 덜렁 매달리고 만 거였다. 이제 나는 USB 포트에 연결된 전선줄 한 가닥에 위태롭게 몸을 의지한 신세가 됐다.
전선이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한참 아래로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떨어졌다. 아래까지 떨어진 나는 나보다 위에 매달린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지구는 덜덜거리며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구가 왼쪽으로 슥 휩쓸리면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왼쪽으로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픽 기울면 다시 오른쪽으로 재빠르게 헤엄치며 몸을 떨었다. 우는 소리가 우주를 뒤덮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각자의 줄을 부여잡고 위쪽만 쳐다보았다.
그들 중 대학 시절 선배를 발견했다. 그는 나보다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가 문득 아래를 내려봤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희망의 눈을 빛내며 한손을 그에게로 뻗었다. 하지만 그는 외면했다.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다. 이건 남을 도와주는 자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그렇게 믿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 이해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다시 눈을 들었다. 그런데 언뜻 마주친 선배의 눈은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연민이 아니라 한심함이 들어 있었다. 그 시선에 나는 곧장 떨어질 만한 한심한 인간이 되어 더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올라간 건지 내가 떨어진 건지 이 검은 우주에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아래에서 본 윗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모두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건 같으면서, 얼마나 견고한 줄에 의지하고 있느냐로 서로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층끼리 뭉쳐 경멸의 시선을 아래로 보냈다. 모두가 자신은 그나마 나은 처지라는 걸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래야 떨어져나가지 않을 테니까.
경멸의 공세에 내 줄은 힘을 잃고 축 늘어났다. 아래로 더 떨어졌다. 더 떨어졌고 더 떨어졌다. 검은 우주 아래로, 선배의 눈빛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제서야 선배는 내가 완전히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붙어 있었다. 떨어지고 있을 뿐 나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지구에 붙어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