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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Mar 13. 2023

국장 사모 감자탕

직장인 3분소설

이 글은 좀 슬픈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순수했던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감자탕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감자탕을 먹는 우리 회사가 너무나 좋았답니다. 뼈를 묻고 싶었어요.


감자탕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도 아니지요. 포만감 있는 점심 식사 메뉴로도 좋고 회식 메뉴로도 꽤 괜찮은 음식입니다. 1차로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겠으나 다들 취하고 배부른 채로 2차로 가기에는 괜찮죠. 괜찮다는 것은 반대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추가금 안 들이고 국물을 계속 떠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사실 소주에는 대단한 안주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대학 입학 이래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요. 쓴맛을 달랠 강렬한 국물 한 술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저는 감자탕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던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자탕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요. 안 좋아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제가 지금까지 구구절절히 밝히고자 한 것은 제가 감자탕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 저는 회식으로 감자탕집을 간다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저는 여러 번 고배를 마신 끝에 어렵게 취업했기에 더더욱 사회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항상 막내로서 벌떡 일어나서 한 바퀴를 돌며 수저와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등뼈에 붙은 고기를 떼어내는 것도 제가 다 했습니다. 집게와 가위 하나만 양손에 들면 맥가이버처럼 유려하게 고기를 발라내는 모습에 부장님도 차장님도 박수를 치셨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무릎으로 다가가 술을 한 잔 따라드리고, 드신 잔을 받아 술을 받고, 제가 그걸 원샷에 다 마시면 요즘 애들 같지 않다며 흡족하게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것이 좋았습니다. 회식이 매번 감자탕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회식만 오면 뚱해서 자기들끼리만 뭉쳐 앉는 다른 동기들보다 제가 훨씬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차장님과 부장님이 감자탕집에 가실 때마다 자처해서 모시곤 했습니다. 차장님과 부장님도 감자탕을 좋아하시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예요.


저는 심취한 나머지 더 맛있는 감자탕, 그러니까 그곳과 비교도 안 되게 맛있는 감자탕을 한번 꼭 맛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진가를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제가 맛집에 집착을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게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더 의욕이 났습니다. 저는 저녁에 회식이 없는 날이면 근처의 감자탕집을 모두 돌았어요. 그리고 진짜 맛집을 찾아냈습니다.


부장님은 ‘그렇게 맛있는 집이 있어?’라고 하시며 피식 웃으셨습니다. 딱히 가 보자는 말은 없으셨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감이 생긴 저는 차장님께도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차장님은 부장님과 눈을 마주치며 껄껄 웃으셨어요. 그럴 수밖에요. 차장님과 부장님은 회사 근처에 감자탕이 오로지 그곳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그날 점심에 저는 다시 부장님께 여쭈었습니다. 그집에 가 보시겠냐고요. 부장님은 저를 빤히 보시더니 그냥 구내식당에서 드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오후에 회의가 있으니 그럴 만도 했어요. 저는 부장님과 차장님 옆에 딱 붙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국장님이 타고 계셨습니다. 제가 면접을 볼 때 면접관으로 뵌 후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어깨가 쭈뼛 굳었습니다.


하지만 국장님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갑질이라느니 권위적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다 헛소문이었어요. 제 사원증을 보고 신입사원이냐며 친히 물어봐 주셨거든요. 저는 깍듯하게 인사드렸습니다. 면접시험 때부터 존경했다고요. 국장님이 흡족하게 웃으셨습니다. 부장님과 차장님도 웃으셨고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다음 국장님은 차장님께 점심을 어디로 먹으러 가냐고 물으셨어요. 그러자 웬걸, 차장님이 감자탕집에 가고 있다고 대답시는 거예요. 저는 감격했어요.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국장님도 감자탕을 좋아하셨던 거예요. 제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예, 국장님! 여기서 500m 정도만 가면 기가 막히게 잘하는 감자탕집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 사회생활은 망해버렸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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