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초심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리고 여전히 두려운

10화 초심과 두려움 사이

by 되더라

9화에서 아이가 건넨 낙엽을 책상 서랍 가장 안쪽에 곱게 보관해두었다.


"선생님이 사랑스러워서요"


그 한마디가 며칠간 계속 마음속에 맴돌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 가는 게 조금 덜 무겁게 느껴졌고,

아이들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보였다.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이 장난치는 모습도, 투덜거리는 모습도

그냥 다 귀엽게만 보이는 거다.


아, 맞아.


이래서 교사를 하고 싶었지.





중학교 때가 생각났다.

"너는 무슨 학원 다녀?"

"넌 네 방 청소 자주 해?"

친구들의 당연한 질문에

"어어 나는 음.."

얼버무렸던 그 시절.


자기 방이 없다는 걸 티내기 싫어서 적당히 웃으며 넘어갔던 기억.

사춘기를 티낼 수도 없었다. 사춘기라는 시기에 방황하면 더 뒤쳐진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모님에게 반항할 틈도, 원망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사춘기를 꾹꾹 눌러담으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장도 했고 부반장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렇게 소심하고 자기가 할 말도 속으로 삼키는 아이가 어떻게 당선이 되었는지.

아마도 그때 날 믿어준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었을까, 친구들이었을까.

그 믿음이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던 것 같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집에 자기 방이 없어도,

친구들처럼 여러 학원을 다니지 못해도, 주말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지 못해도,


그래도 괜찮다고,


너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라고,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는 선생님. 그게 내가 꿈꿨던 교사의 모습 중 하나였다.


수능도 여러 번, 고시도 여러 번,

그 외 다양한 실패를 겪으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붙잡았던 게 교직이었다.


29세,

겨우겨우 얻어낸 첫 발령.


너무 좋았지만 두려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교직 생활이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아이의 낙엽을 받고

며칠간은 정말 마음이 따뜻했다.

맞아, 이거였어.

이 순간들 때문에 교사를 하는 거였어.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

진심 어린 한마디,

서툴지만 순수한 사랑.

이런 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였는데

언제부턴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두렵다.

10년이 넘는 경력이 있어도 아직도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게 두렵다.

학기가 시작하는 2,3월에는 꼭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는 악몽을 꼭 꾸고

낙엽 한 장이 따뜻하게 했던 마음도

며칠 지나면 또다시 불안이 밀려온다.


민원.


그 두 글자가 주는 공포는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를 야단쳤을 때,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을 때,

숙제를 조금 많이 내주었을 때,

심지어 칭찬을 할 때도

혹시나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사랑으로 지도하고 싶은데

민원이 두려워 조심하게 되고,

아이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가 되어버린다.

그게 너무 싫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학교에 간다.

그 작고 느린 아이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의 불안보다 조금 더 크기를 바라면서.

초심은 되살아났지만

두려움도 여전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완벽한 교사가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사랑스러운 선생님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면서.


나에게 낙엽을 전해주던

우리 OO이의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책상 서랍 속 낙엽이 바래지지 않도록

코팅을 해서 고이 간직해본다.


오늘도 나는 노력한다.

두렵지만

그래도 이 일을 사랑하니까.

어제 그 아이를 지도했던 나의 모난 마음을 되돌아보며

오늘 또다시 한 번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편지.jpg 마지막 날 아이에게 받은 편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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