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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가 필요해

#옛날사람#걸그룹은 핑클밖에 몰라

후배님.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이번달 말까지 끝내야 하는 업체점검이 있다.  점검을 해야 할 업체의 수는 정해져 있고 다섯 명의 담당이 다 같이 자기 몫을 해서 파이를 함께 줄여나가는 구조다.  전체 파이가 정해져  있으므로 각자 자기 몫을  안 하면  누군가는 대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 실적이 다른 사람의 1/2이다. 원래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다. 야근을 해도 으싸으싸 다 같이 일을 하면 신이 난다. 혼자 심드렁해서는 일을 안 하는 자가 발견될 때 체감노동의 강도가 제곱수가 된다. 이제 마감이 낼모레인데. 총괄담당이 한숨을 쉰다. 나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단톡방을 연다.  내게는 이전에 근무한 부서에서 함께 한 조직원 네명 단톡방이 있다. 갑자기 급 열이 오르는 지금 이 순간.  톡방이 필요한 시간이다.  '아니~'로 시작된 내 험담에 세명은 일제히 동조를 한다. 내 뒷담화의 대상과 그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전혀 대화에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동조. 무조건 호응.  


애써 쌓은 공을 은근슬적 본인에 돌리는 팀장님. 사람만 좋아가지고 업무가르마를 제대로 못 타주는 과장님. 일도 안 하는데 그저 예쁨만 받는 동기. 뺀돌뺀돌 일을 안하는 후배와 뺀돌이의 일을 다 껴안고 하는 답답한 그의 동기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과 근무를 한 것 같은 생생함이 이 단톡방에 넘친다.  


어렵게 속내를 드러낸 사람에게 입바른 소리는 기분만 잡칠 뿐. 우린 그저 서로만을 본다. 그려 그려 니말이 맞아. 가 젤 힘들어. 그렇게 격렬한 토닥토닥의 시간을 가지면 다시 일할 힘이 난다. 에라, 내가 몇 개 더하지 뭐. 물론 며칠 뒤면 데자뷔처럼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된다.


물론 조직생활에서 또는 일상의 관계에서도 누군가를 여기저기서 헐뜯고 다니는 것은 훌륭한 일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어디 믿는 구석 하나쯤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을  같다. 무조건 내편을 들어줄 사람들게 털어놓는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계속 남만 탓하는 모습이 걱정된 적도 있었다. 래서 조심스럽게 뒷담화의 대상을 두둔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경험상 그렇게 쏟아내고 위로받는 시간이 지난 후엔 상황을 객관화해내는 힘이 생기곤 했다.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실은 팀원의 공과 팀장님의 공을 무자르 듯 나누긴 어렵다는 것. 무른 과장님은 잔소리가 없는 꽤 괜찮은 상사이고, 예쁨을 받는 동기에겐 괜히 예쁨을 받아 나에게 질투받은 죄밖에 없다는 사실. 후배들 간의 일은 그들에게 남겨 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도.


나에게 뒷담화의 무조건적 호응은 '나에 대한 긍정'이다. 사소한 일에도 성질이 나 어쩔  줄 몰라하는 나도 괜찮다, 남을 욕할 자격이 있나 싶을 만큼 부족하고 흠 투성이인 나라도 괜찮다, 그런 사랑받을만하다는 확신이다.  그렇게 위로받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  힘을  내본다.  


이 글을 오픈할 날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땡스 투 단톡방의 세요정,  주현, 유리, 진(그래 , 이효리는 내가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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