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테라스

드레스덴 당일치기 여행

by 본격감성허세남

거점 도시마다 당일치기로 한 곳씩 다녀오고 있다. 뉘른베르크에서는 밤베르크, 뮌헨에서는 슈반가우, 그리고 이번 베를린에서는 드레스덴에 다녀왔다. 드레스덴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혼자 독일 여행을 왔던 시절, 정말 아무 정보도 없이 베를린에서 프라하 가는 길에 드레스덴에 잠깐 들렀었다. 총 2박을 하면서 하루는 발이 아파서 숙소에서 종일 쉬었고, 다음날 하루를 돌아다녔는데 예상외로 유럽의 그 어떤 도시에 못지않게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놀랐었다. 그때 잠깐밖에 못 있어서 언젠가 꼭 다시 와야지 하고 했던 곳인데 이번에 다시 다녀왔다.


아침 일찍 베를린 중앙역에 가서 기차를 탔다. 드레스덴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기차에 타면 늘 그렇듯이 수인이를 안고 기차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가장 앞 칸으로 갔는데 텅텅 비어있는 칸을 발견했다. 같은 1등석인데 텅텅 비어있는 칸이라니, 순간 입 밖으로 "와우!"가 나왔다. 당장 짐을 가지고 자리를 옮겨서 놀다가 좌석 사이 중앙 테이블을 넓게 펴고 그 위에 수인이를 재웠다. 마치 침대처럼 해줬더니 편한지 수인이는 그 어느 기차 여행보다 잘 자더라. 돌아올 때는 아예 그 칸으로 가서 역시나 같은 방식으로 재웠다. 덕분에 드레스덴 왕복 기차는 참 수월했다. 곤히 자는 수인이의 작은 손이 어찌나 귀여운지 살짝 뽀뽀를 해줘도 수인이는 세상모르고 잘 잤다.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잠깐 동안 허용되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참 소중하다. 혼자 다닐 때는 넘쳐나던 여유가 지금은 이렇게 소중한 걸 보면 역시 사람은 부족함을 겪어봐야 하나 보다.


몰래 뽀뽀하게 만든 귀엽고 작은 손


다시 찾은 드레스덴은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이날도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는데 그 덕분에 더욱 눈이 부셨을지도 모르겠다. 드레스덴 구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제대로 맞아서 다 붕괴된 것을 전후에 다시 복구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티가 전혀 없이 이 자리에서 계속 서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 다시 봐도 신기하다.


"수인아, 정말 아름답지? 저기 저것 좀 봐봐."

"여기가 옛날에 다 부서졌던 곳 이래. 보여?"


아무리 말을 걸어봤자 역시 대답 없는 우리 딸. 동행인과 의사소통하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잘 알면서도 이렇게 좋은 곳에 오면 자꾸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주고 싶고,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그런 게 아빠 마음인지라 시도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같은 결과다. 그래도 이런 아빠의 말이 어딘가에 어렴풋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가져본다.


언제나 산책, 또 산책인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참 고맙다. 볼거리가 많기에 지루하지 않게 계속 걸을 수 있고, 베를린과 다르게 노란색이 많은 가을의 모습이 걷는 맛을 더해준다. 중간에 유모차에서 수인이는 낮잠을 꽤 많이 잤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마음껏 드레스덴을 즐길 수 있었다. 가을에 와서 다행이다. 비록 다른 계절에 와본 적은 없지만.



많은 좋은 곳들이 있지만 드레스덴의 핵심은 역시나 엘베 강변을 마주 보고 있는 '브륄의 테라스'다. 예전에 괴테가 와서 거닐어보고 "이 곳이 유럽의 테라스"라고 극찬해서 더 유명한 그곳. 독일에서 돌아온 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다시 가서 걷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끔씩 드는 흔치 않은 곳. 수인이도 여기서만큼은 좋은지 "으. 으." 이런 옹알이를 했다.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나 보다.


브륄의 테라스를 걷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기에 이렇게 효녀 딸을 낳았을까?"


수인이가 잘 다녀준 덕분에 많은 좋은 곳들을 큰 어려움 없이 함께 잘 다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언제 한 번 꼭 가야지 하고 상상만 했던 것들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슈반가우가 그랬고, 이곳 드레스덴이 그렇다. 여행 좋아하는 나에겐 엄청난 행운이다. 다시 한번 고마워 수인아.


유럽의 테라스!
수인이 덕분에 행복한 우리 가족


여행이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지난날보다 남은 날이 더 적어졌다. 앞일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 아쉬운 마음이 생긴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곳, 가족사진을 찍으며 문득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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