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부신 가을날 산책

경복궁과 서울로 7017

by 본격감성허세남

가을 하늘은 끝도 없이 높고 맑으며, 그런 가을엔 걸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연일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가을을 맞아 오랜만에 관광객처럼 서울을 여행하기로 했다. 가장 큰 목표는 걷는 것, 그리고 수인이에게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시작은 경복궁이고, 도착은 서울로 7017이다. 이 정도면 산책 거리도 좋고, 중간에 유모차에서 수인이를 재우며 우리끼리 커피 한 잔 할 수도 있고, 딱 좋은 계획이다 싶었다.


예전부터 평소에도 서울 시내 산책은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수인이가 생기고 난 후에는 그 산책의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아내와 나만 있을 때는 강남, 홍대, 이태원 같은 거리들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수인이가 태어난 뒤론 올림픽공원, 용산 가족공원, 하늘공원처럼 주로 공원들만 다니게 됐다. 그런 수인이에게 이번에는 서울의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서울 여행객! 직접 걷고 서울을 느껴보렴 우리 예쁜 딸내미야.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궁 같은 곳은 거의 항상 들리곤 한다. 그런데 정작 서울에 살면 여러 궁들에 자주 가지 않게 된다. 실제로 주변에 경복궁 같은 곳에 뭐 볼 게 있냐는 그런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확실히 느꼈다. 경복궁은 멋지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운 궁이다. 게다가 엄청난 가을 하늘이 도와주니 말 그대로 곳곳이 눈이 부셨다. 이렇게 멋진 곳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역시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사진 2017. 10. 7. 오후 2 03 40.jpg
사진 2017. 10. 7. 오후 2 08 06.jpg
사진 2017. 10. 7. 오후 1 29 44.jpg 축복 받은 가을 날씨


경복궁 곳곳에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확실히 몇 년 전부터 한복 대여해서 예쁘게 입고 궁 곳곳에서 사진 찍는 모습이 일상이 된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단순히 설명 듣고 의미 파악하고를 떠나 역사적인 장소를 더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랄까? 남들과 다른 복장이 신기한지 수인이도 쳐다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왔는데 느긋하게 왔더니 수인이가 낮잠 잘 시간이 됐는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유모차에 태우고 경복궁을 나서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이리저리 치이며 나왔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기분이 좋으면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는 법.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정부 세종로 청사 뒷길로 해서 광화문 사거리 쪽까지 오니 어느새 수인이는 예쁘게 잠에 들어 있었다. 수인이가 자는 시간은 곧 우리의 평화. 날씨 좋은 휴일에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여유롭고 나긋나긋한 시간.


이날의 핵심은 서울로 7017이었다. 낮잠에서 깨서 활발함을 완전히 되찾은 수인이, 처음 가봐서 곳곳이 신기하게 보였던 아빠 엄마. 서울로 7017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참 즐거운 곳이었다. 예전부터 뉴욕의 하이라인에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이곳에 오니 더 궁금해진다. 언젠가 수인이와 함께 가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2017. 10. 7. 오후 4 42 19.jpg
사진 2017. 10. 7. 오후 4 33 52.jpg
사진 2017. 10. 7. 오후 4 31 22.jpg
사진 2017. 10. 7. 오후 4 49 18.jpg


직접 걸어본 서울로 7017은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늘 보던 서울역 주변 풍경도 고가에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고,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수인이가 걸어 다니기에 큰 문제는 없는 넓이였고, 곳곳에 작은 재미있는 것들도 많았다. 아이들이 점프하고 노는 곳이라든지,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어놨다든지 등.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산책이 금방 끝났지만 오히려 이 정도 길이라 수인이에게는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우리 딸은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녔다. 바깥 구경에, 아빠 엄마와 재미있는 놀이까지. 수인이가 활짝 웃을수록 아빠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수인이가 걷지 못하던 시절에는 이런 하루를 자주 꿈꿨었다. 아빠 엄마 딸이 손잡고 걷는 우리 가족의 모습, 한가롭게 산책하는 모습. 이제는 수인이가 본인의 느낌까지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빠, 저건 뭐예요?"

"우와. 차가 정말 많아요!"


이런 말들을 재잘재잘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애를 태우던 우리 딸은 이제 조금씩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년쯤이면 내 기대처럼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수인이와의 여행이 조금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그냥 걷기만 해도 행복했던 하루.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참 행운이다. 오랜만에 수인이도 활짝 웃어서 기분 좋은 우리 가족사진 덕분에 마무리까지 완벽했던 하루 동안의 짧은 서울 여행. 끝.


사진 2017. 10. 7. 오후 5 01 17.jpg
사진 2017. 10. 7. 오후 2 11 37.jpg
사진 2017. 10. 7. 오후 4 52 54.jpg 행복한 시간을 보낸 수인이네 가족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