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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Apr 14. 2021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오롯한 마음 담아 다정하게 마지막 말을 전해야지.

하나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보고 또 보다 보면 놓쳤던 장면과 대사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좋아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그냥 막연하게 무언가가 그리워질 때,

생각이 많아져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생각나는 영화.


도리스 되리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영화다.


지금까지 대략 5-6번 정도 봤는데, 처음 보던 때와 지금의 감상이 꽤나 다르다.

처음엔 그저 노년의 사랑과 노부모에 대한 가족의 태도, 부토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했던 이 영화는 지금 나에게 울음 버튼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앞두고 있는 지금.

최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더 이상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곳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2월, 내가 정말 사랑하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대 초반에도 친할머니의 부고를 접했지만 사실 할머니와의 큰 유대감이 없었기에 아빠의 아픔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픔과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잘 알지 못했다. 난 겪어보지 않았기에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오롯이 사랑으로 대해주셨고, 나도 온전히 그 사랑을 느끼면서 자랐기에 가루가 되어 내게 온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컸고 아직도 다 슬퍼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공허함을 만들고 흉포한 외로움을 주는지 미쳐 알지 못했다.


2017년 존경하던 이의 죽음이 있었고 많이 힘들었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감당해내기엔 여전히 큰 일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노부부는 각자의 일상에 서로가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커플이다.

아내인 '트루디'가 앞으로 얼마 못 산다면 당신은 무얼 하고 싶냐고 묻자

남편인 '루디'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지만, 뭘 해? 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해.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당신이 있는 집으로 와야지."


라고 얘기한다.


그 당연한 일상에 아내가 없다. 돌아올 집이 없어진 느낌이다. 병으로 먼저 죽을 줄 알았던 남편 '루디'보다 아내인 '트루디'가 먼저 죽음의 곁으로 간 후, 집으로 돌아온 '루디'는 아내의 빈자리를 느낀다. 예전부터 아들 '칼'이 있는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트루디'의 소원대로 '루디'는 일본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아들 '칼'이 왜 두 분이서 한 번도 일본에 오지 않았냐고 묻자 '루디'는


"그때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라고 답한다.


인간의 삶은, 아니 생명의 삶은 유한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트루디'보다도 '루디'가 먼저 죽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유한한 삶의 길이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나 당장 5분 뒤에 죽을 수도 있는 기한을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갑자기 지금 당장 사망할 수도 있다.


흔히 얘기하는 "있을 때 잘해야지."라는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지만 나 자신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그래서 나도 이런 죽음에 대한 영화나 책 등을 보고 나면 다시 한번 오늘을 즐기며 살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죽음 말고도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살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고 그 사람 덕에 나는 없던 자존감이 생기기도 했다.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사랑이라는 것을 한 적은 물론 있었지만 인생이라는 것을 조금 더 살아가면서 지금의 사랑이 내가 여태껏 했던 사랑의 크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게 자리 잡았다. 내 생각들이 안정적이게 되니 내 마음도 안정적이게 변하고 내 사랑도 너무나도 안정적이다.


오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을 다시 보면서 노부부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 모습과 같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약 내가 내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 죽음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까?


'루디'는 '크루디'의 옷을 갖고 일본에 와서 아내의 옷을 입고 길을 걷는다.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 코트를 열고 '루디'에게 입혀진 '크루디'에게 벚꽃을 보여준다.


아내 '크루디'가 보고 싶어 하던 후지산을 보기 위해 부토 무용수인 소녀 '유'와 함께 여행을 가지만 수줍음이 많은 후지산은 자신의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많이 아파서 밤새 간호를 받던 '루디'는 아침이 다가오는 새벽, 후지산의 얼굴을 보게 되고 부토 화장을 한 뒤 아내의 기모노를 입고 더 가까이에서 후지산을 볼 수 있도록 발걸음을 옮긴다. 육체는 '루디'이지만 '크루디'의 화장과 옷으로 '크루디'가 된 '루디'는 마치 거울처럼 호수에 비치는 후지산을 앞에 두고 생전 아내의 꿈이었던 부토 무용을 춘다. 아내와 함께. 그리고 그 아내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난다.


'루디'의 죽음을 알게 된 후 '유'가 그의 옷을 입고 앉아서 훌쩍이던 모습은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 가족들도 귀찮아했던 어려워했던 '루디'와 '크루디'인데 낯선 땅에서 만난 소녀 '유'는 '루디'의 죽음에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슬퍼하고 그를 그리워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유'의 무용 장면에서 '루디'의 모자가 보인다. 이 영화는 '크루디'로 시작해서 '루디'의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유'의 이야기로 끝난다.


가족보다도 가족 같은 '유', 독일에서도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대했던 딸의 여자 친구 '프랜지'.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어떻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었지만 나도 겪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영화에서 '유'와 '프랜지'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많은 후회를 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도 힘들었고 입원하시기 직전엔 치매 증상도 있으셨기에 할아버지를 보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만나고 전화하고 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매년 나를 데리고 가던 식당도 내가 모시고 가겠다고 해놓고는 가지 못했다. 장례를 치르던 그때에도 나는 마음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아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아파하지 못했고 울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사랑하는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래서 너무나도 아파했고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1-2주에 한번 정도 납골당을 찾아가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오지만 왜 진작에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뿐이다. 30년이 넘도록 나는 사랑받았는데 그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도 전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더 정신없이 일을 하고 더 바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부재를 나는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움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후회할 짓을 했더라도 후회해봤자 힘든 건 본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니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앞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는데 나는 과연 지금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다. 




함께 걷던 바닷가에서 '루디'를 향해

"우린 서로가 있으니까 그게 제일 큰 행복이야"라고 말하던 '크루디'

'루디'는 그 마음을 알고 세상을 떠났으니,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루디'가 원하는 세상을, 원하던 꿈을 보여주고 행하고 죽음을 맞이한 '크루디'도 두 개의 양배추 롤이 되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살지는 못해도, 내일 죽을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또 다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상처 주지 않게, 사랑을 담아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라고 내 사랑은 오롯이 당신을 향해있다고.


그게 가족이 됐던, 친구가 됐던, 연인이 됐던 잃게 된 후엔 어쨌든 또 후회되는 일만 기억에 남을 텐데 내 마지막 말만큼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예쁜 마음 담아 다정하게 사랑을 전해줘야겠다.



"내가 죽으면 남아있는 그녀의 기억은 어디로 가는 거지?"


내가 죽어도 그들을 누군가 기억할 수 있기를.

벚꽃이 진 후에 다시 벚꽃이 피어 화려한 봄을 맞이하듯,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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