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월 whalemoon Nov 16. 2024

편의점 재고 손실은 알바 급여로!

불의는 참을 수 없지

나는 지금 주말 야간-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의 강도는 쉽고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라 흔히 말하는 편의점 진상도 없다. 명절이나 빼빼로 데이 같은 행사 때도 행사 물품을 들여놓지 않아 편하다. 폐기를 눈치 보지 않고 먹어도 된다고 했고, 폐기가 없는 경우에는 그냥 폐기 찍고 음식을 먹으라고 교육을 받았다.


 8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3개월이 지났다. 주말마다 쉬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많이 버는 달에는 90만 원정도가 통장에 찍히니 열심히 일을 했다. 업무 시간에는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친절하다’라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지만, 매번 오는 손님들은 특징으로 기억해서 담배를 미리 꺼내놓기도 하고, 종이컵을 준비하기도 한다. 가끔 들려 비비빅 10개를 사는 부동산 할아버지는 에쎄 0.1을 늘 함께 사가지는데, 아내 분 혹은 직원 분으로 보이는 손님이 와도 “부동산 할아버지가 피는 담배가 뭐였죠?”라고 물어보면 바로 꺼내줄 수 있을 정도로는 외웠다. 강아지와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가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십중팔구로 편의점 손님이다. “안녕하세요!” 라며 서로 인사하고 동네를 돌아다닐 때 너무 후줄근하게 다니면 안 되겠다고도 생각한다.


 편의점 급여는 익월 12일에 정산이 된다. 본사에서 지급되는 게 그때라고 하니, 12일 정도 깔고 가는 거는 그러려니 했다. 사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한 달치 급여를 최소 5일 정도 미리 지급하는 개념이었지만, 아르바이트는 시급으로 계산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일한 시간을 정리해 캡처된 이미지를 올리고, 잘못된 게 있으면 개인톡으로 이야기 한 뒤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번 달은 12일이 되어도 급여에 대한 말이 없었다. 물어볼까 하다가 하루, 이틀 정도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14일 새벽 바빠서 늦었다며 급여 정산이 올라왔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일 한 근무시간을 확인한 뒤 집안일을 했다. 오후에 다른 직원 수정된 시간이 있다며 올라와서 다시 확인하는데 재고 손실을 각 아르바이트생 급여에서 제외한다는 식으로 표기가 되어있었다. 금액은 각 44,000원으로 거의 4시간 반에 해당하는 시급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물어봤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재고 손실을 급여에서 차감하나요?”


“6개월 간 재고 손실이 난 거가 160만 원인데요. (중략) 저 혼자 부담하기 어려워서 직원수 / 6개월의 시간으로 나눠 부담하는 겁니다.(중략)”


 이게 무슨 소리지. 재고 조사는 4월부터 10월 초를 기준으로 했다. 나는 8월 1일부터 일을 했다. 내가 일한 기간의 재고는 두 달치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른 새벽에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생들은 10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들의 근무시간은 나의 반이기 때문에 시간도 훨씬 짧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 급여에서 4시간 반에 해당하는 급여를 차감한다고? 단 한 번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그냥 차감한다고 정산서에 올려버리고 끝이라고? 그리고 다시 카톡 내용을 읽어보니 ‘6개월의 시간으로 나눠 부담한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6개월 동안 내내 4.4를 제외하고 지급하신다는 거죠?”


 라는 내 말에 다른 직원이 “설마요”라고 답했다. 약 20분 정도가 지난 뒤 한 달에 266,000원을 부담주기는 어려워서 6개월 동안 4.4를 계속 제외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단, 정리를 하자면 이 편의점은 새벽 2시에 문을 닫는 특수한 편의점이다. 추석 당일 역시 문을 닫았다. 아이스크림이나 휴지, 라면, 물 등이 편의점 외부에 있는데 문을 닫는다고 해서 들여놓거나 자물쇠를 채우지 않는다. 누군가 들고 가도 CCTV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고 점장 역시 처음부터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었다.  점장은 전체 취소, 주류, 안주, 과자 등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재고 조사 결과지를 보니 가공 식품에서 26만 원, 생활잡화에서 69만 원, 주류에서 40만 원의 로스가 발생했다. 과자는 7만 원, 즉석조리, 즉 안주에서는 7천 원, 간편 식사류는 오히려 3만 원 이상이 남아있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새벽 시간에 점장은 자주 여자친구와 편의점을 방문해 이 제품, 저 제품 폐기를 찍고 야외 테라스에서 한참 동안 술을 먹는다. 냉장고에 술을 넣어두기도 한다. 반품이 되는 제품들도 표기를 해 놔도 정상적으로 폐기 혹은 반품을 찍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손실들을 직원들, 아르바이트생에게 부담을 한다?


 사실 이 월급 이야기가 있기 전, 점장은 나에게 개인 카톡으로 폐기 영수증 하나를 보내며 왜 폐기를 찍었냐고 물었다. 호두 정과, 피스타치오 등 안주류였고 점장 본인이 방문해서 폐기를 찍고 가지고 간 물건이었다. 나는 목이 마를 때도 700원짜리 물조차 모두 내 돈으로 결제해서 먹었고, 폐기가 없을 때를 대비해 저녁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이런 책이 잡히지 않을까 미리 우려한 것도 있지만 편의점에 보통 구비해 두는 물을 보니 판매하는 물이 아니라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사 온 더 저렴한 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원가로 처리를 한다고 해도 700원짜리 물을 폐기 찍고 마시는 건 점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남을 위한 내 생각은 이상한 오해로 돌아왔다. 난 내가 한 게 아니다. 점장님이 방문하셨을 때 찍은 거 아니냐. 난 물 하나도 무조건 다 돈 내고 사 먹는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폐기 찍힌 시간이 내 시간이라 물어봤다고 말하며 대화를 끝냈다.


 이미 이 오해로 나는 이 가게에 대한 정이 조금 떨어져 버렸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라는 말만 덧붙였어도 괜찮았을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하여 유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월급 정산하는 도중 아르바이트 생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알고 나니 오래 다닐 수 없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설사 직원의 실수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월급에서 차감할 수는 없다.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 지급) 제1항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전액을 지급해야 하지만, 직원과의 동의가 있을 경우 그러니까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가 되고 모두 합의를 한 경우에는 뭐 일부 공제가 가능할 수도 있다. 직원의 실수 또는 고의 등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는 민사를 거치는 것이 맞다.


 나는 월급 차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단순히 법을 지키지 않아서, 가 아니라 최소한의 공지나 언급조차 없었다는 것, 그리고 모두 어린 친구들이 일을 하는데 자신의 손해를 타인에게 넘기려고 한 것에 가장 화가 났다. 편의점이 손실이 아닌 이익이 막대하게 났다고 하여 그것을 직원, 그것도 아르바이트생과 나누지는 않는다. 하지만 손해를 봤으니 책임을 전가한다? 만약 누군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생 수가 4로 줄게 되면 44,000원 이상을 제외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친구들은 처음부터 44,000원을 제외한 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고 6개월간 제외한 다는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점장의 말에 아 그렇구나, 정도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이번달 제외는 그렇다고 쳐도, 다음 달에 제외된 급여를 받았을 때 이게 뭡니까?라고 따져 물으면, 내가 말했잖아가 될 수 있는 상황.


 어쨌든 결론적으로 점장이 그냥 손해를 모두 안고 가겠다고 말하며 월급은 정상적으로 입금이 됐다. 내 성격을 아는 남편은 지금 점장에게 따지지 말고 그냥 일단 참으라고 말하며 평일 일을 다시 구해보자고 했다. 너라면 분명 이야기하다가 법 조항 말하고 너만 돌아이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나는 논리적으로 말을 하기 위해 미리 계획을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재택으로 할 수 있는 평일 업무를 계속 찾고는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더 급하게 찾을 계획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 출근을 했다. 일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당장 돈이 나올 곳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출근을 했는데 이면지 등을 모아둔 곳에서 이력서를 발견했다. 느낌이 싸하다. 아르바이트 공고를 바로 확인했는데 내 시간의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공고를 찾았다. 내가 그만둘 것을 예상한 것인지, 혹은 차감을 하지 못하도록 막은 나를 자르기 위함인지는 알지 못한다. 점장은 애초에 내가 법대를 다님을 알고 있었고, 처음에 면접 보거나 할 때 주휴수당, 4대 보험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법대라서 더 잘 알겠지만,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을 못 참고 그만두거나, 신고에 대비를 하거나 등등이지 않을까. 선경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만두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벌써 모집 공고를 올렸는지 참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법대를 다니는데, 혹은 졸업했는데 일반 회사에 취직한다는 건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꽤나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 3-4년 전 그만두고 나왔던 회사에서도 급여, 정부지원금 등을 떼어먹으려다가 딱 걸린 적이 있었고, 대부분의 고용주들이 타인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겨우 법대생이지만 법적인 조언을 구하거나, 내 업무와 관련 없는 내용증명, 고소장 등을 작성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러니 한 회사들.


 나는 여전히,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퇴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회사를 다니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또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고 자문했다. 그리고 생각을 한 끝에 ‘나도 좀 이상한 사람인 것 맞지만,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 많아.’라고 자답했다.


 오늘은 일을 하는 내내, 새로운 직장을 찾아볼 것 같다. 재택으로 할 수 있는 공고는 한계가 있어서 '내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제법 상식이 통하는 회사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