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니체이야기_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
프롤로그
큰 아이가 짜투 5번째 이야기를 썼는지 물어봤다. 그 질문에 답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5번째 글을 쓰고 브런치에 공유를 했지만 정작 아이들에겐 낭독해주지 못했다. 원래 이 글의 의도는 나의 세 아이들에게 낭독해 주기 위함이다. 짜투 이야기를 낭독을 할 때 나와 아이들 사이에 공유되는 추억이 희미해지는 듯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우리 아이들임을 다시금 마음에 담는다.
제 1부_짜라투스트라의 서설_6
짜투가 사람들의 차가운 비웃음을 느끼면서 생각에 잠기고 있었던 그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일어났어. 줄타기 광대가 공연을 시작한 거야. 그는 두 개의 탑 사이를 팽팽하게 연결한 밧줄을 타고 있었어. 그런데 그가 밧줄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익살꾼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남자가 뛰어나와 재빠른 걸음으로 줄타기 광대 뒤를 따라오는 거야! 그리고는 사납고 무서운 목소리로 줄타기 광대에게 소리치며 점점 줄타기 광대에게 가까이 다가갔어.
“어서 앞으로 빨리 가! 이 절름발이 게으름뱅이야! 느림보 겁쟁이야! 얼굴 창백한 녀석아! 빨리 가지 않으면 내 발꿈치로 너를 간질여 줄 거야. 여기 두 탑 사이에서 뭐 하고 있냐? 너는 저 탑 속에 처박혀 있는 게 낫겠어. 넌 지금 너보다 뛰어난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잖아!”
갑자기 나타난 익살꾼 같은 그 남자는 누구일까? 사실 줄타기는 엄청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일인데, 그 남자는 갑자기 뛰어나오질 않나, 재빠르게 줄 위를 걷질 않나, 또 소리까지 쳐가면서 줄타기 광대를 뒤쫓질 않나. 그 남자는 줄 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줄타기 광대를 위협하는 목적에만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여. 지난번에 짜투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 기억나니?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에 놓인 하나의 밧줄이고,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 짜투는 줄타기 광대가 위험한 밧줄 위에서 왔다 갔다 춤추고 재주 부리는 모습에 빗대어 인간은 동물과 위버멘쉬를 왔다 갔다 한다고, 그런 모험의 인생을 사는 게 인간이라고 표현한 듯 보여. 그렇다면 익살꾼 같은 그 남자는 위버멘쉬, 즉 자기 극복과 성장의 모험을 추구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런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니? 그래서 그의 말은 이렇게 들려. “너는 줄타기도 빨리 하지 못하는 느림보 겁쟁이이니까 이런 줄 타는 모험은 시도조차 하지 마라. 줄타기는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야. 넌 줄 위로 오지도 말고, 니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말고, 주어진 대로 그냥 살아. 넌 내 인생에 방해만 될 뿐이야.”
두 사람 사이가 한 발짝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상상하지도 못했던 굉장히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 그 익살꾼 같은 남자가 악마처럼 소리를 지르며 줄타기 광대를 훌쩍 뛰어넘었던 거야! 줄타기 광대는 갑자기 당황해서 밧줄 위에서 중심을 잃고 말았지. 그는 허둥지둥거리다가 그만 장대를 놓쳤는데, 그의 몸이 장대보다 더 빠르게 땅바닥으로 떨어졌어. 시장바닥은 순식간에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같이 난리가 났어. 사람들은 기겁하여 이리저리 부딪히고 뒤엉키며 뿔뿔이 흩어졌어. 특히 줄타기 광대가 떨어진 그 자리 주변은 더 심한 난리였지.
그런데 짜투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거야. 사실 줄타기 광대의 몸은 짜투 바로 옆에 떨어졌어. 줄 위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참혹하게 다쳤을까? 그런데 아직 죽지는 않았고 간신히 숨은 붙어있었어. 잠시 후 그 광대는 의식을 찾았고, 자기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짜투를 바라보았어.
이윽고 광대가 말했어. “지금 제 옆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저 악마가 언젠간 나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리라는 것을. 악마 같은 저자는 이제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죠. 당신이 어떻게 좀 막아 주실래요?”
짜투가 대답했어. “친구여, 내 명예를 걸고 말하는데, 당신이 말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악마도 지옥도 없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몸보다 먼저 죽음에 이를 겁니다. 그러니까 더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줄타기 광대는 짜투의 말이 혼란스럽고 믿기 어려웠어. 그래서 짜투를 올려다보며 말해.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비록 내 목숨을 잃더라도 나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나는 매를 맞고 제대로 된 사료도 못 먹고 굶주려가며 춤을 추도록 훈련되고 길들여진 한 마리의 짐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몸이니까요.”
줄타기 광대의 인생을 상상해 보자. 그는 오로지 외줄 위에서 춤추는 재주를 위해 훈련하고 길들여진 인생이었어.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선택한 인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거나 강요된 삶이었을지도 모르지. 날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매를 맞으며 훈련했겠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일이 무섭고 하기 싫고 힘겨웠을 거야. 그러다가 서서히 매를 맞는 것도 굶주리는 것도 무서움도 익숙해지고 길들여졌겠지. 그런데 이제는 몸이 만신창이 되어 죽을 지경이고 삶의 전부였던 줄 타는 재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어.
그런 그에게 짜투는 말했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지금까지 외줄 타는 일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 일을 천직으로 삼아왔다. 그건 전혀 무시당할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 천직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손수 묻어줄 것이다.”
짜투는 줄타기 광대와 그의 삶을 인정했어. 줄 위에 있는 인생의 힘겨움과 외로움을 짜투가 알아줬던 것이지. 비록 그 광대는 길들여진 짐승처럼 수동적으로 살아왔고 줄 타는 재주도 길들여진 행위의 결과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광대는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시도했고, 계속 모험이 전부인 인생을 살아왔잖아. 짜투는 인정의 표시로 자신이 직접 광대를 묻어준다고 약속해.
그런데 이상한 건, 줄타기 광대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는 거야.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정도면, 꽤 줄타기를 잘했을 텐데 말이야. 그렇다면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그보다 더 위험한 순간도 넘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줄타기 광대는 줄은 탈 줄 알았지만, ‘줄타기 장인’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줄타기 광대의 인생은 길들여진 짐승 같은 삶이었잖아. 수동적이고 습관적인 삶의 모습 말이야. 그런 삶의 태도로는 줄 타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위험한 상황에서 중심을 잃고 줄 아래의 깊고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반면 ‘줄타기 장인’은 줄 위에 있다는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떤 위험스러운 상황에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견디고 이겨내서 결국 줄 위에서 계속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리고 춤을 추고, 또 그런 줄 타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지 않을까? 줄 타는 일같이 모험으로 가득 찬 우리 인생길을 ‘줄타기 광대’처럼 수동적인 자세, ‘줄타기 장인’처럼 자유롭고 주체적인 태도, 둘 중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이제 죽어가던 광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그렇지만 그는 자기를 인정해 주고 알아준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짜투의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약간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그는 죽어갔어.
에필로그
줄타기 광대의 인생을 생각할수록 나의 인생과 오버랩된다. 지난 40여 년의 나의 인생은 가정 분위기, 사람들과의 관계, 학교 및 다른 공동체에서의 위치 속에서 타인의 반응과 요구에 맞춰서 살았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늘 부족했던 나는 매사에 수동적인 자세와 태도, 가치관으로 살아왔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수동성’이 계속 길들여졌다. 그래서 줄타기 광대가 중심을 잃고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줄타기 광대가 짜투에게 하는 말들도 이해되고 공감된다.
짜투는 이제야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그동안 성자 노인과 사람들과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줄타기 광대는 죽어간다. 짜투의 지혜의 여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짜투의 인생이 더 기대가 된다.
<참고 문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순옥 옮김. 홍신문화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김신종 옮김. 페이지2북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지음. 세창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