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그만하면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분명 평범하지는 않았다. 사회적 위치나 능력을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책 전체에 걸쳐 철학적 뒷받침에 전문가적이고 높은 학식을 가졌음이 넘쳐 흘러내렸다. 저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평범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과 평범함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특권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한다. 읽고 내 수준의 소화가 끝난 지금 설득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평범함은 평균 이상의 사람들에게 주는 심적 안정감 정도로 생각될 뿐이다. 그럼에도 평범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마음보다 안주하려는 내면의 합리화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아직 머리를 쪼개줄 도끼 같은 책이 더 필요한지도..
이 책으로부터 무릎을 탁하며 칠 정도로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 타인을 평가하는 우리들의 시선이 그것이다. 누군가들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파악하려 든다. 그를 있는 그대로 보거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물음표로 남겨두기보다 내가 아는 틀을 적용해 욱여넣고 재단해버린다. '그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결론짓는다. 가끔 이렇게 사람을 잘 평가하는 걸 자랑삼기까지 한다. "내가 사람을 볼 줄 알지."
자폐를 가진 동물학자, 뛰어난 비언어적 지능으로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금의 동물복지가 있기까지 큰 역할을 해온 템플 그랜딘의 말을 빌려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지 않고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 "
최소한 우리는 타인에게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의 아주 작은 단편만 볼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사람에 호불호가 상당히 심하다. 단지 훈련된 예의와 사회 속에 섞이기 위한 눈치로 불호인 부분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도 많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일하고 있다.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은 평균, 평범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만하면 괜찮다는 포용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 또한 평범의 찬란함이다. 판단해서 재단해버린 기준은 사실상 어떠한 진실도 담고 있지 않다. 단지 내가 가진 편향일 뿐이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게 어떻게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모호하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평범함이다.
이런 평범함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문학을 만난다. 문학에는 우리가 살아볼 수 없는, 우리 삶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다양한 결말들이 있다. 책을 읽을 때 단박에 파악되는 스토리가 좋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문학, 특히 고전문학을 접하면서 이해 안 되는 모호함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데미안을 좋아하게 된 그 첫 번째 이유가 뭔 소린지 이해가 안 돼서다. 뭔 소린지 몰라서 다시 읽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단박에 판단되지 않는 이런 문학을 좋다고 이제는 말한다.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면 소설 보다 긴 그의 삶을 단 몇 마디로 판단해버리는 현상, 이는 분명 타인을 향한 타이트한 자기만의 틀로 평가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재단은 결국 자신에게로 향한다. 타인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자는 분명 자신에게도 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을 평범함에서 멀리, 이상향을 위해, 능력 있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향해 나아가길 재촉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빛남이 진짜 그의 능력만으로는 되지 않듯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뛰어남에 닿기는 힘들다. 도달하면 결국, 늘 그 이상이 있다.
능력주의라는 폭군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함 속에서 주어진 행운일 뿐이다. 세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능력이 선호된다. 자신이 원래 가진 능력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능력은 단지 우연적 합치로 성공에 다다른다. 이리저리 지금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따라만 다니다 보니 본연의 나를 잃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또다시 나다움으로 돌아왔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에 끼워 맞추지 않은 내가 갖고 있는 본연의 능력은 무엇일까? 비록 세상의 필요에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비범함은 무엇일지! 다들 쫓아가는 자본주의적 능력에서 벗어나 이대로도 괜찮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