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oe J Aug 21. 2024

괜찮은 죽음을 위한 괜찮은 삶

참 괜찮은 죽음을 읽고 

심란했다. 죽음을 만날 줄 알고 넘겼던 책장에서 사회인으로 비루하게 살아가는 내 민낯을 만났다. 나는 어쩌다 단지 월급을 위해 일하는 의사가 되었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훌륭한 의사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2개의 영역을 실습하면서 가슴이 뛰기도 했다. 하나가 흉부외과였고 또 다른 하나는 헨리마시 저자와 같은 신경외과였다. 'GREAT SURGEON' 고작 인턴으로 만났던 그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두개골을 열고 심장과 대동맥을 여는 그들이 멋져 보였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저 동경이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환자의 생명으로 인한 짐을 퇴근 후 가져가고 싶지 않은 아주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였다.


보통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많은 죽음을 만났다. 이미 예견되었던 가족의 죽음도 있었고 믿을 수 없는 사고로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 가족 2명을 기다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3시간 동안 했던 적도 있었다. 죽음은 필수조건이다. 죽음을 달고 살지만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게 또 보통의 삶이다. 


보다 잦은 죽음과의 대면은 내게 다양한 입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흉부외과와 신경외과에는 전공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턴이지만 환자들의 주치의를 맡게 되었다. 수술과 관련된 자세한 설명은 헨리마시 같은 전문의에게 듣는다. 하지만 수술동의서를 받는다던지, 상담 시간을 제외한 불쑥 떠오르는 질문은 주치의인 내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의 수술은 길고, 힘들고, 어렵고, 위험해서 환자들은 늘 불안하다.


흉부외과에서 대동맥치환술 환자를 만났다. 심장에서 가장 굵게 뻗어 나오는 혈관인 대동맥을 대체물로 바꾸는 수술이다. 수술 전날 수술동의서를 받아야 했다. 수술 동의서 양식은 간단한 수술이든 복잡한 수술이든 동일하다. 수술부작용을 설명하고 사인을 받으면 된다. 보통 일반사람에게 이런 큰 수술은 처음이다. 특별히 큰 수술에 환자에게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따로 수술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물론 환자들은 이미 집도의와 수차례 상담을 했고, 수술 과정도 설명을 들었고, 동의가 된 상태다. 하지만 생소한 단어와 처음 받아보는 두려운 수술에는 계속 질문이 생긴다. 그런 의문을 해결해 주는 것도 내 할 일이었다. 


생과 사 그 중간쯤에 있는 환자를 만나 "이러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 말만 15번 넘게 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환자에게 위험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나는 긴장해 있었다. 환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할까 봐, 날카롭고 예민한 반응에 내가 상처받을까 봐, 실수해서 꼬투리를 잡힐까 봐... 그때 환자분이 내게 물었다. "이렇게 죽는다고만 하니 무섭네요. 내가 살 수는 있는 건가요?" 아! 그는 단순히 내가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몇 차례 만났던 분인데 처음 얼굴 너머의 사람을 만났다. 내 아버지보다 약간은 나이가 많아 보였고, 환자보다 더 불안한 표정의 배우자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떤 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고단함이 먼저일 수 없는 분임은 분명했다.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진정한 공감을 했던 금기시되는 감정이입을 하게 된 환자. 


10시간 넘게 여러 의사의 손을 바꿔가며 끝낸 그 환자의 수술. 집도의는 셋이었지만 10시간 동안 다리에 마비되는 느낌이 생기도록 내가 스크럽을 섰던 그 환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 퇴원하기까지 하루에 최소 10번은 들락거렸던 그 환자는 건강하게 병원을 나갔다. (책에 나오는) 책임지지 않아도 돼서 과도하게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질병에서 많이 봤지만 내 것 아닌 것 같았던 죽음, 삶과 한 끗 차이밖에 안 되는 그것을 돌아봤다. 


누구나 큰 병에 걸릴 수 있다. 바란다고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의사라도 틀릴 수 있고 성공확률이 높아도 실패가 내게 일어나면 100%다. 죽음은 반드시 온다. 누군가는 이미 생각해 본 죽음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준비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내게 다가오는 죽음이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얼마나 줄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간이 왔을 때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라며 한탄하느라 소중한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오늘따라 더 두서가 없다. 죽음을 이해하기에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이전 06화 내 삶의 무게를 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