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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J Sep 11. 2024

나의 남은 날들

<남아 있는 나날>을 읽고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허영심이었다. 역사가 깔린 소설, 특히나 유명한 상을 받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을 읽어가는 재미는 지적 허영의 성근 그물을 채울 희망이 된다. 거기에 딱 맞는 책이었다. 책 속에는 2번의 세계대전과 세계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유럽 정통 귀족 그리고 집사라는, 지금은 다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직업이 등장한다. 집사라 하면 고양이 집사밖에 떠오르지 않던 내가 이제 위대한 집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게 되었으니 왜 기쁘지 않을 수 있었겠나?


주인공 스티븐스는 완벽한 직업인이었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직업관으로 감정을 배제했다. 주인에 절대적 충성을 다하고,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을 즈음, 일괄품목으로 구매된 그는 바뀐 주인의 여행이라는 배려로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는 위대한 집사였고 그래서 그의 인생에 스티븐스 자신은 없었다. 품위와 명예도 모시는 귀족에 의해 결정되었다. 열심히 자기 일만 완벽히 해낸 그는 시간이 지나 달링턴을 모시던 집사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달링턴 경의 몰락이 스티븐스를 발목 잡은 듯 보이지만 그 또한 스티븐스 자신의 선택이었다.


누구나 현재 자신의 시각으로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 지금 가진 지혜를 동원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나보다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는 있으나 결국 삶의 키를 쥔 사람은 항상 자신이다. 상사의 잘못된 지시에 관습, 관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두뇌 없는 손발이 된다는 소리다. 직업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였지만 내게는 육아적 관점으로 다가왔다. 너무 소중해서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나가 실패할까 봐 온갖 선행과 스펙을 갖춰주는 요즘의 엄마들은 어쩌면 아이를 두뇌 없는 손발로 키우고자 하는 게 아닐까?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보통 부모가 바라는 일은 아니다. 아이 입에서 절대 선행학습을 하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리는 없다. 하지만 그걸 하다가 실패를 겪고 머리로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현실이 어쩌면 또 다른 버전의 스티븐스를 만드는 길인듯 보였다.


스티븐스는 노신사의 모습으로 과거의 영광을 나눌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켄턴양을 찾아간다. 사회적 역할을 모두 포기하고 가정을 꾸린 켄턴양은 자기 선택을 후회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직업 현장에서 감정적이되기도 하는,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켄턴양은 이따금 후회할지라도 자기 가치로 만들어간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그녀가 그린 자기 미래는 불완전하지만 행복했다. 시간은 돌릴 수 없다. 책의 제목이 <남아 있는 나날>인 이유도 스티븐스의 남은 날에 대한 변화를 예견한다.


스티븐스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의 스티븐스와는 다른 사람이 된 그가 앞으로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집사를 그만두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좀 더 소신 있고 감정표현도 하는 집사로 변화를 꾀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나를 찾기 위함에 이미 늦은 때란 없다.


내 남은 날은 어떻게 채워가야할까? 우선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라 상사에게 "yes"밖에 못하는 웃고있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다. 때로 주어진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함에 눈감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변화의 시도조차하지 않았던 나를 돌아보니 부끄럽다. 내 꿈틀거림으로 시스템이 바뀔 가능성은 사실 별로 없다. 스티븐스가 달링턴경의 생각을 바꿔 히틀러의 이용에 휘말리지 않게 할수 있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습아닌 선택에서오는 결정은 작게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에 의심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결국 행동을 일으킨다. 혼자는 힘들지만 함께라면 또 해볼 일이다.


말이 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쓰고있는 마음도 못할것 같아서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각이 깊어져 도저히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을 수 없게 쓰고 생각하고 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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