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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쉽지 않다.

현재 투 잡 뛰고 있습니다.

by JUNO

호주 동쪽 어느 한 시골에서 드디어 두 번째 일자리를 찾았다. 이 또한 쉐프 포지션. 이력서엔 요식업의 경력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쪽 도시로 처음 넘어와 호주 스타일 비스트로에서 첫 일을 구했는데 두 번째 일자리도 비스트로에서 일한다. 비스트로란 호주 펍에서 동시에 운영하는 식당을 말한다. 한국에서 이런 스타일의 식당과 비교하라면... 이태원에 유명한 펍에서 피자를 시키면 된다. (사실 이건 미국 스타일)


첫날이다. 오늘 일한 이곳은 다른 비스트로랑 다르게 인기가 없다. 솔직하게 맛도, 스타일도 그냥 그런 펍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하지만 이미 일하는 곳보다 돈도 적게 준다. 시간당 3달러는 적게 주고 주말엔 시간 + rate(50%, 75%)식으로 올라가서 이미 일하는 곳보다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안 하기엔 남는 시간엔 일 할 곳이 없기에 그냥 한다.

무튼 오늘의 상황은 이렇다. 현 헤드쉐프가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 지 한 달이라는 시간도 안된 상황이라 쉐프들도 처음부터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말하길 전 헤드가 Fucked up 하고 식당을 도망치듯이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굉장히 어수선하고 포지션대로 움직여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정말 단 한 명도.


배경은 이렇게 시작되고, 헤드쉐프의 성격이 참 뭣 같다. 같이 일해본 사람 중에 제일로 지랄 맞다. 그래서 일하는 도중에 "아 오늘만 하고 그냥 그만둔다 말해야겠다" "아 근데 뭐라고 말하고 그만두지?" 이런 생각이 나를 그냥 잡아먹었다. 헤드쉪 혼자 실수한 걸 동료들이 보이는데서 화를 내고, 첫날인데 배움도 없이 그냥 메뉴판 보고 만들라 지 X 하고 도중에 실수하나 하면 쯧쯧거리며 사람을 굉장히 기분 상하게 한다.


퇴근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사실 이 동료도 쉐프 포지션이 아닌데 그냥 Bar Staff에서 불려 온 1인이다.)랑 흡연 타임을 가졌다. 얘기하면서 원래 저런 사람이냐 물어봤다. 맞다고 한다. 참으로 지 X맞고 후라이팬을 손님들이 보이는데서 내려치고.

그래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한숨 퍽 퍽 시면서 어떻게 그만둔다 말할까 고민은 서른 번은 넘게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이런 엿 같은 상황이 있어도 이렇게 빨리 포기하면 내 앞으로 남은 어려운 일은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날카롭게 베었다.


그래 그냥 닥치고 하자. 이것도 못하면 주에 30시간 밖에 쉬프트도 못 받고 돈 모은다고 마음먹어놓고 고작 이것 때문에 포기하기엔 나약하다. 그래서 요즘 자주 애용하는 Chat GPT한테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용기 받을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정말로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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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람 하나 때문에 내가 약해지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이루려는 목표를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차라리 내가 없으면 이 레스토랑 속도가 느려짐을 느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야겠다.


사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려움이었다 한국이었으면 분명 이미 포기하고 내일 일을 안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부딪혀보고 끝 장을 봐야겠다.



누군가가 보기엔 '나약한 새X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도 일하다가 금방 포기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느꼈고요. 근데 막상 숨을 턱 막는 상황에 놓이니 저도 모르게 쫄더라고요. 대신 이런 겁먹는 환경에 걸리는 것도 운이라 생각합니다. 맨날 쉽고 사람 편한 일만 찾다 보면 정말 좋겠지만 가끔씩 이런 시련은 와줘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도 주인공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해지는 것처럼 저도 이걸 저에게 대입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가서 맥주 안주 거리도 생길 거고요.


사실 굳이 글은 안 쓰려했는데 오늘 느낀 그 감정을 미래의 내가 보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서 적어봅니다. 워홀 처음으로 일하면서 이런 거 때문에 일하기 싫은 적은 없었는데 뭐 한 번 해봅시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마인드로 12월까지 해보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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