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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어머니, 아들에게 존중을 가르치자.

by 마음벗

아들이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는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일 때가 많지만, 그 속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람은 다 달라. 그래서 대부분의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당연한 거야. 그렇게 살자.”

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 싹을 틔운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항상 그렇게 이야기해본다.


결국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마음이 큰 사람은, 작고 사소한 일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또 아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네가 결혼해서 아내와 너 중에 누군가 더 희생해야 한다면, 그건 너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누라 잘해줘서 잘못된 집,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아들에게 당부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결국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너 혹시, 결혼하면 아침밥 차려달라고 할 거야?”

내가 물었다.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먹고 싶으면 내가 차려 먹어야지. 왜 차려달라고 해?”

그 물음이 너무 의아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맞다.

그런 생각이라면 잘 살 것임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한 안도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들이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했다.


나는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아직 어린 아들이 알아듣지 못함에도 나의 당부는 계속되었다.


“네가 결혼해서 아내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례하게 대할 일은 없을 거라 믿어. 하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내가 아들을 잘못 가르친 탓이라 여기고 며느리에게 무릎 꿇고 빌 거야. 그러니 그런 일은 애초에 만들지 말아라” 아들에게 우스갯소리 같은 사실상 경고를 했다.

아들은 “왜 그래요?”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 말은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엄마는 네 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의 잘못까지 감싸는 일방적인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순간, 그가 내 아들이라 해도 나는 그 행동의 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진짜 편이란, 잘못을 가르치고 바로잡는 사람이다. 그것이 부모의 도리이자 인간으로서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아들이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또 한 가정의 중심으로서 사람을 존중하며 살기를 바란다. 존중은 배우자에게 주는 가장 큰 사랑이며, 그 사랑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주변의 여느 시어머니들의 불평 이야기 속에 아들의 생일 이슈는 항상 존재한다.

아들의 생일에 며느리가 미역국을 끓여줬냐고 묻는 시어머니들.


나는 그 질문이 늘 궁금했다.

그게 며느리의 정성과 도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점검하려는 무의식적인 기준일까?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며느리의 생일에는, 아들에게 “너는 미역국 끓여줬니?” 하고 물을 것인가.

왜 같은 일인데 질문은 한쪽으로만 향하는가.


결혼은 역할의 분담이 아니라 책임의 공유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챙기는 일은 성별의 몫이 아니라, 마음의 표현일 뿐이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누가 끓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은 의무로 강요할 수 없고, 마음으로만 존재 가능하다.

자식만 챙기는 불공평한 집보다, 모두에게 공평한 집에서라면 며느리가 소외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시댁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아들에게 꼭 심어주고 싶었다.

시어머니라는 자리는 단순히 권위를 행사하는 위치가 아니라, 관계의 균형을 가꾸는 자리라고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짜 부모의 모습일 것이다.

아들이 그런 어른의 모습을 보며 배우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시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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